노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치매, 아줌마 아저씨들이 걱정하는 것은 건망증일 게다. 치매는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발생하는 질환이고, 건망증은 신경회로의 전달속도가 줄어들어 일어나는 증상으로 완전히 다르다. 다만 치매의 초기증상에 건망증과 유사한 점이 있어 혼돈스럽다.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이 가물가물하지만 주변의 힌트를 얻어 '아하'하고 기억이 돌아오면 건망증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째로 잊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우긴다면 치매 가능성이 높다.
■ 단어만 살펴도 그것이 본인과 주변을 얼마나 황폐화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치(癡)나 매(呆) 모두가 '어리석다, 미련하다'의 의미이며, 영어 dementia는 'out of mind'라는 뜻이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된 '정신지체'와 달리 치매는 정상적인 사고와 생활을 해오던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되었으니 개인과 주변의 피해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말과 행동은 물론 사회규범과 윤리의식 등이 저장된 뇌세포가 훼손됐는데 본인은 모르니 아니라고 우기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는 것은 물론 발병원인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내과 외과, 신경과 정신과 등 70여 질환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잘 아는 것만 해도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저산소증 갑상선기능저하 비타민B결핍 알코올ㆍ일산화탄소중독 뇌염 에이즈 우울증 간질 머리외상 뇌종양 등 열거하기 버거울 정도다. 하지만 '그냥, 나이가 들어서' 등 아직도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절반에 이른다. 노망(老妄)이라 부르며 운수와 팔자로 치부하고 체념해온 이유다.
■ 국가가 치매를 적극 관리하고 환자의 경제적 부담도 지원하는 방안이 시행된다는 소식이 참으로 반갑다(건망증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갖가지 '시혜성 공약(空約)'이 난무하고 있지만, 치매관리법은 그런 부류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지난해 8월 4일 제정된 법으로 6개월 후인 내달 5일부터 시행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치매관리위원회도 만들고 지자체와의 업무협조 방안도 서둘러야 한다. 온 국민이 크게 기대하고 있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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