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라도 내리지 않으면 잿빛 일색인 겨울, 샛노란 봄꽃은 보는 이의 마음에 이른 봄을 불러낸다. 꽃 하나로 공간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꽃 장식의 힘이다. 자칫 칙칙하고 삭막할 수 있는 실내 공간에서 그 위력은 더욱 돋보인다.
이달 29일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웨딩 페어에는 노란 봄꽃, 개나리가 등장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이 수수한 꽃을 화려한 웨딩 페어에 불러들인 이는 일본 황실 꽃 장식을 전담하는 업체 히비야 카단의 수석 플로리스트 우쓰미 가즈노리 씨다. 행사 준비를 위해 서울에 온 그를 만났다.
"개나리는 봄을 대표하는 꽃이죠. 동양적인 멋도 느껴지구요. 화려하지 않아서 지나치기 쉬운 이 꽃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해보고자 선택했습니다."
우쓰미 씨는 개나리의 생동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계절감도 강조하기 위해 노랑, 주황, 초록으로 색상을 구성했다. 선명하고 밝은 색의 조합이 싱그러운 햇과일을 연상시킨다. 이는 그가 평소 플라워 디자인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색에 따라 전체 이미지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색에 맞춰 꽃을 꽂으려고 하죠. 노랑, 주황, 초록을 함께 쓰거나 파랑, 보라, 빨강 등으로 세 가지씩 묶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라데이션 효과를 노려 더 풍성하고 화려해 보이게 하는 거죠. 파란색 꽃은 많지 않아 포인트처럼 씁니다."
꽃도 좋지만 자신이 꾸민 꽃을 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좋아 30여년 간 플로리스트로 살고 있다는 우쓰미 씨. 정적이고 우아한 이미지 때문에 플로리스트는 여성의 영역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남성 플로리스트도 많다. 다량의 꽃을 옮기는 일이나 줄기를 다듬고 잎을 떼어내는 일, 오래 서서 하는 일이 많아 체력 소모가 큰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꽃을 든 남자' 중 한 명인 그는 꽃 장식의 방식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발전해왔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교배종의 등장으로 표현의 폭이 넓어진 것. 파란색 장미처럼 색이 다양해진 것은 물론 작약만큼이나 큰 '이브 피아제'라는 장미도 생겨났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꽃에 대한 놀라움 때문에 점점 더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요."
도구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가시처럼 침이 돋은 받침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초록색 스펀지처럼생긴 오아시스를 쓴다. 이와 함께 꽃을 꽂는 방식도 달라졌다. 이전의 미국식에서 지금은 유럽식, 그 중에서도 프렌치 스타일이 대세라고 한다. "과거처럼 삼각형, 마름모꼴 등 도형에 맞춰 단정하고 깔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곡선을 살려 스타일리시하게 보여주죠. 곡선은 일반적으로 여성적인 의미와 통하지만 여기서는 말끔히 다듬어지지 않아 생명력이 느껴지고 와일드한 것이 남성적인 느낌에 가깝습니다."
일본의 꽃 장식은 유럽 스타일을 따르지만,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개성을 담아내고 있다. 일본전통 미의식의 대표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와비사비(わびさび, 侘寂)'가 자연스럽게 우러난다고 할까. "일본 문화의 정신이자 미적 관념인 와비사비는 꽃꽂이에서도 한적하면서도 고요하고 쓸쓸한 느낌으로 표출되지요." 그는 에도시대의 다도 문화에서 비롯된 이 관념이 오늘날의 꽃꽂이에도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가 좋아하는 꽃은 쭉 뻗은 줄기에 하얀색과 초록색이 조화를 이룬 백합. 그는 "꽃도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각각의 개성을 존중해야 하죠. 그들을 이해하고 개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디자인하는 것이 저의 데코레이션 철학"이라고 말했다.
● 우쓰미 가즈노리가 알려주는 집안ㆍ식탁 초간단 꽃 장식
◆ 옷걸이를 이용한 수국 장식
1. 사용하지 않는 철제 옷걸이를 잘라 S자 형태의 받침대 두 개를 만든다. 하나는 한쪽에 털실이나 리본을 감는다. 털실이나 리본이 컬러풀하면 더 좋다.
2. 적당한 크기의 오목한 접시 위에 털실 감은 옷걸이를 올리고 반대편 또 하나의 받침대 위에 수국과 잎을 얹어준다.
3. 접시에 적당히 물을 붓는다.
◆ 와인잔 위 리스 장식
1. 집에 있는 와인잔 3개를 준비하고 물을 붓는다. 와인잔 대신 투명한 유리컵도 괜찮다.
2. 버려진 나뭇가지와 갯버들을 화관처럼 둥글게 말고 철사로 묶어 고정한다.
3. 동그랗게 만든 리스를 와인잔 위에 올리고 튤립, 호접란, 라넌큘러스를 잔에 하나씩 꽂아 리스를 따라 얹는다.
◆ 파스타 접시로 들어간 스카비오사
1. 오목한 접시 안에 작은 돌을 넣어 둔다.
2. 오아시스를 돌멩이 모양으로 잘라 돌 가운데에 놓고 접시에 물을 채운다. 요즘은 초록색 오아시스뿐 틈灸?핑크, 그레이 등 다양한 색의 오아시스가 있으니 취향대로 사용하면 된다.
3. 오아시스에 하늘하늘한 꽃 스카비오사와 난 잎 몇 줄기를 직선과 곡선이 대비를 이루게 꽂는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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