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 있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가까이 나라없는 서러움을 견디며 에티오피아에서 유대인의 전통을 이어오던 이들은 ‘솔로몬왕의 후손’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새로 만들어진 조국으로 금의환향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얻은 점령지에 만든 정착촌에 이들의 터전을 마련해 줬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 테러와 폭력이 얼룩진 곳이지만 조국의 환대에 감사하며 자식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일했다.
영광스런 귀향은 옛말, 차별만 만연
아슈르 엘리아스는 그런 부모를 가진 평범한 에티오피아계 이민 2세대다.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병역의 의무도 마쳤고, 예루살렘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텔아비브에 있는 마케팅 회사에 취직했다.
평범해 보였던 엘리아스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건 1996년. 이스라엘 정부가 에티오피아계 이주민들이 기증한 혈액 전량을 비밀리에 폐기해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혈액을 통한 감염의 위험을 없앤다는 게 표면적 이유지만, 흑인의 피가 많이 섞인 에티오피아의 피는 받지 않겠다는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혈액을 ‘더러운 피’로 낙인 찍은 정부의 행태에 충격을 받았다.
엘리아스는 “한쪽에서는 이스라엘 사회에 동화하기 위해 애쓰는데 다른 쪽에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며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엘리아스는 안정된 삶을 버리고 ‘에티오피아 유대인을 위한 이스라엘 연합’(IAEJ) 에 들어가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엘리아스는 에티오피아 출신 노동자 중 청소나 경비 같은 비숙련 직종에 일하는 비율이 60%에 달하고, 평균 가계소득도 일반 이스라엘 가정의 절반에 불과한 현실이 인종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잘 교육 받은 에티오피아계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 좋은 일자리를 얻어 경제적 안정을 이루면 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엘리아스는 이스라엘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IT(정보기술) 기술교육이 방법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2004년 ‘테크커리어’를 만들어 IT교육 운동을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테크커리어를 졸업한 해더스 가비후는 “교육 수료 후 하포알림 은행에 직장을 얻었고 얼마 전 팀장으로 승진했다”며 “테크커리어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자부심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IT 교육으로 정체성과 자존심 회복
테크커리어를 이수한 학생은 지금까지 200여명. 이중 12명이 이스라엘 최대 은행으로 꼽히는 디스카운트 은행에 취업했다. 디스카운트 은행의 샤이 바르디 부이사는 “에티오피아계 이스라엘인들이 우리 사회에 동화되길 원한다면 그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엘리아스는 테크커리어 졸업생들이 이스라엘 주류 사회에 편입되는 것을 넘어 이스라엘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기술교육과는 별개로 인종주의나 유럽 금융위기와 같은 시사문제를 공부하는 교양과정 수업을 늘리고 있다.
경비원으로 일하다 테크커리어 졸업 후 텔아비브에 있는 프로그램 개발회사 콜플로우소프트웨어에 취직한 슐로미 데스타는 “수업을 통해 에티오피아계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데스타는 지난해 이스라엘 중부 페타티크바시에 있는 모든 에티오피아인 학교를 폐교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신학기면 교장이 에티오피아계 신입생의 입학을 거절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학부모들이 에티오피아계 학생이 들어오면 학교 전체의 교육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며 학교에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에티오피아계 아이들은 에티오피아인들만의 학교로 몰리는데, 결국 ‘게토(강제 거주지역)’처럼 되면서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운동은 성과를 얻어 기디온 사르 이스라엘 교육부 장관에게서 8월까지 에티오피아인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약속을 받아냈다.
엘리아스는 “차별철폐법이 있긴 하지만 정부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더 많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이스라엘 의회 보고서를 인용, “정부조차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고용을 장려하도록 한 차별철폐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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