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색의 향기] 올림픽의 그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색의 향기] 올림픽의 그늘

입력
2012.01.26 12:01
0 0

근대 올림픽은 쿠베르탱 남작의 제청에 의해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됐다. 제1회 올림픽이 열린 해인 1896년 즈음 서구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팽창해 나갔다. 돈이 되면 아편이나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국경을 넘나들며 거래가 이루어졌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맹신은 얼마 있지 않아 전 세계적 전쟁과 학살을 불러오지만,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당시의 서구는 희망의 백 년을 꿈꾸고 있었다.

아테네 올림픽은 14개국이 참가했다. 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오늘날의 올림픽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거기에 참가 선수는 모두 개인 자격이었고, 전체 참가 선수 중 절반이 넘는 선수가 그리스인이었다. 대회 최고의 화제는 올림픽의 정신을 계승한다며 새로 만든 '마라톤'이라는 종목이었다. 여기에 그리스인이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그리스의 민족자긍심을 높여주었다고 한다. 마라톤 우승에 고무된 아테네에서는 올림픽의 발상지인 펠로폰네소스에서 계속해서 올림픽이 열리길 원했다. 물론 그 청은 쿠베르탱 남작에게 있어 받아들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의 패배로 상처받은 프랑스인을 격려하고 동시에 자국민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올림픽을 제청했는데, 동방의 소국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저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의 전성기는 수천 년 전이지, 1900년대 자본주의 시대는 아니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다음 올림픽 개최지는 프랑스 파리가 되었다.

우리에게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로 인해 기시감이 있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히틀러의 선전수단에 불과했다. 76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이스라엘 선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테러가 있었고, 그 후로 올림픽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테러 노이로제에 시달려야 했다. 모스크바 올림픽과 LA올림픽은 각자 어울리는 친구 국가끼리 참가해서 서로 웃고 떠드는 일종의 친목회에 가까웠다. 88년을 앞둔 서울에서는 폭력적인 개발이 단행되었고(늘 그런 식이긴 하지만), 개막식 때 풀어놓은 비둘기와 당대의 군사정권의 후예들은 아직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활약 중이다. 그때의 개발 방식은 2008년 베이징에서 흡사하게 재현되었다.

올림픽은 평화의 상징, 아마추어의 제전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런 고매한 정신에 적합한 예를 근대 올림픽에서는 찾기 힘들다. 64년 동경 올림픽은 최초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위성 중계되어 본격적인 TV시대를 알렸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해체된 옛 유고연방 소속 국가들과, 라트비아 등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난 국가들이 참가해 사회주의의 몰락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때 미국 농구대표팀의 별명이 '드림팀'이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코카콜림픽'이라 불릴 정도로 다국적 자본이 활개를 쳤고, 그것은 2000년대를 장식할 신자유주의의 전주곡이었다. 한때 '독립국가연합'이라는 게슴츠레한 이름으로 올림픽에 참여했던 러시아는 2006년 베이징 올림픽 도중에 그루지야를 침공하는 기염을 토한다(그루지야는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올림픽이 북반구에서 열렸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경제효과에도 불구하고, 수도에서 올림픽을 두 번 개최한 그리스는 지금 국가부도의 위기다.

올림픽은 각 종목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펼치는 훌륭한 볼거리임과 동시에, 시대의 징후임에 분명하다. 올해는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런던은 지구를 포획한 산업화의 시작점이다. 런던에서 비롯된 최근 200여 년의 변화는 인류가 지나온 2만 년의 시간보다 더 가팔랐다. 올림픽과 함께 그 시간들은 자본이 지구와 인간을 잡아먹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2012년이 되었다. 런던 올림픽에서도 역시 우리는 아마도 수많은 광고판을 뒤로하고 민족주의의 대리만족으로 활용되는 선수들의 몸놀림에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런던에 성화가 타오를 여름, 전 세계, 아니면 아시아, 혹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는 어떤 변화의 갈림길에 서고, 무슨 선택을 할 것인가. 올림픽은 강력한 징후이자 시대의 거울이다. 이제 2012년이다. 새로운 시대가, 뚜벅뚜벅 온다.

서효인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