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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식은 세계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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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식은 세계화할 수 있을까

입력
2012.01.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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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하루 3끼 나물 반찬에, 익힌 생선에, 부침개에, 탕국이었다. 차례상에 올린 음식 처리 하듯 먹다가 문득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연휴 때만큼 집중적으로 한식(韓食)을 먹을 때도 드물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인들 같으면 보통 때는 아침에 구운 식빵에 우유 한 잔으로 때우는 사람이 적지 않을 테다. 점심 때가 다가와서 좀 헛헛하다 싶으면 우선 밥을 찾지만 짜장면 같은 면이나 피자가 당기는 날도 가끔 있다. 저녁은 찌개나 국에 한 끼 제대로 챙겨 먹고 싶지만 어쩌다 회식이 있어 참치회로 배 부를 날도 있다.

개항 이후 불과 100년 사이 한식 일색이던 한국인 식단이 참 다양해졌다. 한국인의 식생활 속에서 중식(中食)은 이미 별미로 먹는 외국 음식이 아니다. 평범하게 한 끼 값을 하는 일반식이다. 생선회처럼 한식과 곧잘 원조 논쟁에 휩싸이는 일식(日食)은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나 라면집 등이 늘어나면서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해가며 한국인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피자, 파스타 등 이탈리아 음식은 양식을 대표하는 한국인의 일상 메뉴 중 하나다.

한류 붐의 확산에 고무돼 정부가 2008년 '한식 세계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2017년까지 한식을 세계 5대 음식으로 육성하겠다며 그렸던 이미지가 아마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한국의 직장인이 "오늘 점심은 파스타" 하듯,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에서든 "비빔밥 어때" "불고기 먹으러 가자"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도록 하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듬해 대통령 부인이 명예회장을 맡은 한식세계화추진단을 발족했고 100억원의 예산까지 배정했다. 추진단은 한식재단으로 탈바꿈해 본격 출범했고 예산도 3배 안팎으로 늘었다.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 과학이며 철학까지 동원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성과가 전혀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한식 메뉴를 개발하고, 현지 진출 가이드를 마련하는 등 한식 수출을 위한 길을 닦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정부가 지원 했든 안 했든 해외 여기저기서 한식에 주목하는 이벤트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는 것은 한식의 가능성에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일이다.

문제는 그 정도라면 좋을 것을, 정부가 너무 욕심을 내서 서두른다는 데 있다. '한식 세계화' 목표로 보면, 정부는 예산 얼마 지원하고 정책만 잘 펴면 10년 안에 한식이 세계인의 식탁에 당당히 오를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예산 50억원을 투입해 뉴욕에서 고급 플래그십 한식당을 개점해 이를 각국으로 확산시키려던 계획이 참여하려는 민간 업체가 나타나지 않아 시작도 못해 보고 결국 무산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식 세계화'는 한국 음식으로 외국인들의 혀를 사로 잡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식당을 또 와서 먹고 싶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10년, 20년 안에 해결될 일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세계화에 성공한 음식도 없다.

세계화를 위한 발걸음 단계에서 한식이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메뉴 개발보다 오히려 한식당의 위생, 서비스 개선을 꼽고 싶다. 일본 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신오쿠보에 즐비한 한국 식당들은 평균적으로 위생이나 서비스의 질이 인근 다른 일본 가게에 비해 떨어진다. 내온 음식을 먹을 때 각자 덜어먹도록 하는 배려도 부족하다.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을 맞는, '한식 세계화'의 발진기지라고 해야 할 한국 내 식당의 상황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인데도, 한국은 된장찌개를 한 냄비에 놓고 같이 퍼먹는데 일본은 따로 덜어먹는 것처럼 어쩜 그렇게 다를까요"라고 한 일본 여기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 '한식은 왜 여전히 중저가 음식 취급을 받을까'라는 의문을 해결하는 열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김범수 문화부 차장대우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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