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이 예상되긴 했지만, 그보다 더 나빴다. 수출은 물론이고 소비, 투자 등 거의 모든 부문이 뒷걸음질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성장률 쇼크’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올해 1월 무역수지가 2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경고음도 들려온다. 작년 3분기까지 비교적 선방했던 우리 경제가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유럽 재정위기의 충격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2011년 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보다 0.4%, 전년 동기대비로는 3.4%에 머물렀다. 한은이 불과 한달 전 내놓은 전망(전기비 1.0%, 전년 동기비 4.0%)와 비교하면 상당히 충격적인 성적표다.
특히 우려되는 건 경제의 두 축인 수출과 내수의 동반 악화다. 작년 4분기 수출은 전기 대비 1.5% 감소하면서 2009년 1분기(-4.3%) 이후 가장 큰 폭의 둔화세를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이번엔 유럽 재정위기가 수출 둔화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수도 꽁꽁 얼어붙었다. 민간소비가 2009년 1분기 이후 처음 마이너스(-0.4%)를 기록했고, 설비투자(-5.2%) 및 건설투자(-0.3%) 감소세도 두드러졌다. 주 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선진국 경기 둔화로 수출이 나빠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했지만 내수 부문에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것이 우려되는 대목”이라며 “내ㆍ외수 복합 둔화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이 전기 대비 2.2% 감소하는 등 부진을 주도했고, 제조업 역시 마이너스 성장(-0.5%)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작년 연간 성장률은 2010년(6.2%)의 거의 절반 수준인 3.6%에 그쳤다. 작년 12월 전망치(3.8%)보다 0.2%포인트 낮은 것이다.
수출 부진이 예상보다 심각해지면서 무역수지 흑자 행진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무역수지는 29억3,200만달러 적자를 기록 중이다. 수입 증가율(9.2%)이 수출 증가율(2.3%)을 월등히 앞선 탓이다. 이 추세라면 2009년 1월 이후 2년 만의 적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도 예상된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는 98개 상장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대비 2.3%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정부와 한은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해석을 경계한다. 한은 김영배 경제통계국장은 “작년 4분기 주식시장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 온난화에 따른 겨울의류 소비 감소 등 일시적 요인이 적지 않았다”고 진단했고,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작년 11월까지 수치만 반영하는 속보치 통계와 달리 연말 재정집행 효과 등이 반영된 확정치 성장률은 다소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경기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전반적으로 경기 탄력도가 많이 떨어진 흐름이어서 올해 연간 전체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고,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도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는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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