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부모, 직업, 직장과 사는 아파트 동 호수까지 신상털기(신상정보 유출)가 시급하다. 주범의 사진은 필수. 이들을 처단할 용기 있는 자 없는가."
지난달 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자살한 대구 중학생 사건 직후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이런 글이 게시되자 누군가에 의해 가해학생, 가해학생의 부모, 같은 학교 친구의 개인정보가 온라인 공간에 잇따라 공개됐고, 이들 모두 사이버 비방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21일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과 외손녀의 서울 통인시장 방문 사진을 공개하자 바로 화제가 된 것은 외손녀의 패딩 점퍼였다. '이 점퍼의 성인용은 300만원에 이른다', '브랜드는 이탈리아 몽클레어다' 같은 분석 댓글이 이어졌고 삽시간에 인터넷에선 대통령 외손녀의 명품 의상 논란으로 엉뚱하게 퍼져갔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무차별적인 '신상털기'가 반복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일상화, 검색엔진의 발달로 이제는 평범한 개인의 글, 핸드폰 번호, 가족관계 등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지경이다. 최근에는 유명인의 옷, 가방 제조사와 가격 등을 분석해 공격 소재로 삼는 식으로 신상털기가 변질되기도 한다.
신상털기에는 주로 구글 같은 검색엔진이 이용된다. 여러 방식으로 개인 아이디를 찾아내 검색어로 입력하면 당사자가 과거 네이버 등의 카페나 블로그에 공개 상태로 올린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글에서 언급된 주거지, 생년월일 등을 단서로 미니홈피 등을 재차 검색해 특정인물을 찾아내는 식이다.
신상털기는 인터넷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특정 갤러리 이용자와 초보 해커 사이에서 한때 유행했고, 이들은 '사이버 수사대', '코찰청(디시인사이드 코미디 갤러리+경찰청)', '코정원(코미디 갤러리+국정원)'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코글(코미디 갤러리+구글)로 불리는 신상털기 전용 검색엔진도 있다. 한 네티즌은 "구글만으로도 70% 정도 (개인정보를) 털 수 있지만 검색 조건 등이 좀 더 정교한 코글을 이용하면 거의 다 파악이 가능하다"며 "'나이든 사람은 자기 한글이름을 영어타자로 친 걸 ID로 많이 사용한다'는 식의 안내서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해킹 툴을 이용, 보안서비스가 취약한 일부 쇼핑몰 등의 고객 정보를 빼내 활용하는 수법도 있다.
타인의 신상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유출하는 심리의 배경은 무엇일까. 신상털기 경험이 있다는 이모(28)씨는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인물을 온라인 공간에 올려놓고 단죄하는 게 하나의 놀이가 됐다"며 "우리가 올린 신상 정보가 인터넷에 큰 파장을 일으킬 때마다 뿌듯한 기분을 즐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불안 심리가 있고 자존감도 낮은 이들이 온라인에선 영향력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걸러지지 않을 경우 해당 인물에 대한 호불호, 관음증 등과 결합해 비이성적 판단이 확산된다는 점이다. 소설가 공지영씨의 샤넬백 논란, 이 대통령 외손녀 패딩 점퍼 가격 논란 등이 대표적인 경우. 인터넷 논객 진중권씨는 무리한 신상 털기와 왜곡으로 물의를 빚었던 '타진요'에 대해 "사실은 철저히 의심하면서 의혹은 철저히 신뢰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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