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보다 국내 현안을 선택했다. 1시간 5분 동안 진행된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은 경제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3년 동안 이룬 최대의 업적이기는 하나 유권자의 관심이 적은 외교는 짤막하게 언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경제 불평등과 빈부격차 해소, 공정한 룰의 적용을 통한 미국 가치의 회복을 강조했다. 표밭인 중산층을 염두에 둔 것들이다. 공정한 룰 속에서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 '건실한 경제(An economy built to last)'를 경제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이날 그가 밝힌 경제 관련 생각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보여준 정치적 입장보다 훨씬 강경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연설문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선거용이라고 결론 내렸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국정 연설을 경제에 할애한 것은 재선의 최대 걸림돌이 경제 문제라는 보좌진의 진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국정연설에서 제시한 친기업, 친부자 정책은 자취를 감췄다. 그는 대신 "중산층의 안전과 성장이란 미국의 오래된 약속이,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불평등이 증대하면서 위협받고 있다"고 빈부차이를 지적했다. 또 "위기에 처한 것은 민주당의 가치도, 공화당의 가치도 아닌 미국의 가치"라며 "나는 모든 사람이 공정하고, 같은 원칙이 적용되는 나라를 마음 속에 그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실한 경제를 위해 제조업체에게는 아웃소싱(외부 위탁생산)이 아닌, 일자리를 국내로 가져오는 인소싱을 요구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문을 인용해 "기업인들이 조국에 일자리를 가져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면, 조국은 당신이 성공하도록 모든 것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 월가 시위대가 비난하는 탐욕스런 월가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가 스스로 세운 법대로 운용되던 시절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금융계 부당이익을 감시하는 금융범죄부서 신설을 약속했다. 또 "경기 모멘텀을 위해서는 어느 누구와도 협력하겠지만, 경제위기를 가져온 바로 그 정책으로 되돌아가려는 어떤 시도에도 맞서 싸우겠다"고 공화당을 겨냥했다. 부자들과 관련해선, 공화당이 계급투쟁이라며 반대해온 '버핏세' 도입의 의지를 밝혔다. 그는 "연간 10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는 최소 30%의 세금을 내야 한다"면서도 "연소득 25만달러 미만인 98%의 가구는 세금이 올라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를 향해 앞으로 통상교역의 파도가 높아질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 국가들의 불공정 관행에 보다 공격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시장의 룰에 따르지 않는 경쟁자들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등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조사하기 위한 무역조사부서의 신설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의 불공정 교역관행에 대처하는데 실패했다"는 공화당 대권주자들의 비판에 대응한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공정'을 강조한 것에 대해 민주당은 케네디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고, 공화당은 칼 마르크스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공정한 가교가 되는 것이 그만큼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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