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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hankookilbo/ '왕따' 용어, 피해자를 낙인 찍어…언론에서 다른 표현 찾았으면…

입력
2012.01.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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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는 'Bully(약자를 괴롭히는 사람, 약자를 괴롭히다는 뜻)'라는 말이 있어 미국 사회에서 학교 폭력 사태가 터질 때 언론은 보통 'bullying 사건이 있었다'고 보도합니다. 'Bully'는 괴롭히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지만 우리말 '왕따'는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의 측면을 강조합니다. 언뜻 두 단어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왕따'라는 표현에는 (특히 가해자들이 사용할 때) 사건의 발단을 피해자에게 전가시키는 심리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사난타H에서 '한국일보가 '왕따'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을 때 피해자가 아닌 다른 학생들이 피해자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 대목도 이를 방증합니다. 다시 말해 '쟤는 뭔가 모자라 '왕따'니까 괴롭혀도 돼'라는 심리를 부추기는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그에 반해 'Bully'는 가해자의 행위를 부정적으로 재단하는 표현입니다. 물론 요즘 '일진'이란 표현을 사용하긴 하지만 이게 반드시 '왕따를 괴롭히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더 광의적으로 쓰이고 심지어 소위 '잘 나가는' 애들을 지칭하기 때문에 역시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용어로 대체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언론에서 '왕따'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90년대 말 '왕따'가 널리 쓰이며 왕따 현상이 오히려 가속화했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좀 '덜 떨어진 애'나 '친구 없는 애'로만 여겨졌던 학급의 약자들에게 이제 하나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해진 꼬리표가 생긴 것이죠. 일단 '왕따' 로 낙인 찍히면 가해자들 뿐 아니라 급우 전체에게 '마음대로 괴롭혀도 된다'는 하나의 면죄부가 생기는 셈입니다. 물론 한국일보에 국한하여 제기하는 비판이 아니라 언론이나 사회 전반적으로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한국일보 팟캐스트 방송 시사난타H 15회 내용에 대한 청취자 주지한씨의 의견입니다)

'왕따'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돌리는 일. 또는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기재돼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측은 "왕따라는 단어가 사전적 의미로 봤을 때 크게 한 쪽에 치우친 단어는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한국일보 교열부는 "왕따가 피해자에게 더 집중된 단어인 측면이 있다"며 "'따돌림 현상'보다는 '왕따'가 더 단어의 강도가 세고 현상을 확실하게 보여줘 언론에서 많이 쓰이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지한씨가 지적하신 대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름 붙이기'로 의도치 않은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 동감합니다. 왕따 역시 '집단 따돌림'등 보다 정확한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일보는 사회적 현상을 명명할 때 더 심사숙고해서 또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겠습니다.

한국일보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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