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분야 연구원들의 경쟁업체 이직을 금지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원 등 고위직들이 경쟁회사로 옮기는 걸 막은 판례는 있었지만 사원급 연구원까지 이직을 금지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보다 특허 등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가치를 우선한 것이어서, 산업계의 핵심인력 스카우트 관행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24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통신장비업체 LG에릭슨이 지난해 같은 장비업체인 노키아씨멘스네트웍스코리아(이하 노키아씨멘스)로 이직한 연구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2건의 전직금지청구소송에서 모두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는 지난 6일 LG에릭슨이 노키아씨멘스로 이직한 3세대 이동통신 분야 연구원 4명을 상대로 제기한 전직금지청구소송에서 LG에릭슨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3부도 LG에릭슨에서 4세대 이동통신서비스인 롱텀에볼루션(LTE) 장비를 다루다 노키아씨멘스로 옮긴 연구원 3명에 대해 같은 판결을 내렸다.
두 소송의 피고인 연구원들은 LG에릭슨 재직 시 퇴직 후 1년간 경쟁업체의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겠다는 전직금지계약에 서명했지만 노키아씨멘스는 이들을 빼갔고, 이에 LG에릭슨은 소송을 냈다. 법원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LG에릭슨에서 다룬 중장기 기술개발 계획, 현지화한 3세대 이동통신 및 LTE 장비의 기술적 장단점 등 6가지 영업비밀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이라고 판시했다.
당초 원고나 원고측 변호인은 소송제기에도 불구, 승소가능성을 낮게 봤다. 전직금지 계약을 맺었더라도 법원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 원칙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고, 더구나 피고들은 임원급 아닌 사원급 연구원이었기 때문에 과거 유사소송에서 이긴 전례가 없었다고 회사측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례적으로 기업비밀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고측 변호인인 맹정환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전세계적으로 특허소송이 확산되는 등 IT업계에선 지금 기술보호를 위해 기업들이 사활을 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법원도 직업선택의 자유 못지 않게 기업비밀의 보호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판결에 따라 통신업계를 비롯한 IT업계에선 향후 마구잡이로 경쟁업체 직원들을 빼내가는 스카우트 행태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기업에 주는 심리적 영향은 매우 크다"면서 "스카우트를 통한 기술 빼가기 관행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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