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개별 공시지가 톱10을 싹쓸이 한 '금싸라기' 땅. 하루 유동인구 150만명에 달하는 황금상권. 서울 명동 한복판에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24층짜리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실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건물 전체를 녹색 분진막으로 차단한 채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공사현장을 둘러싼 회색 철제 담장 높이만 5㎙가 넘는다. 공사장 출입구에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하는 공사안내 표지판조차 없다. 바로 주한 중국대사관 신축공사 현장이다.
24일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주한 중국대사관은 명동2가 83의7 일대 9,831㎡에 기존 6층 건물을 헐고 지하2층, 지상 10ㆍ24층 2개 동 규모로 들어선다. 최대 높이 90㎙, 연면적 1만7,199㎡에 달하는 대형 건축물로, 용적률 136.65%를 적용 받았다. 주한 외교공관 가운데 층수로는 단연 최고이며, 연면적 기준으로도 현재 최대 규모인 서울 정동 러시아대사관(1만2,012㎡)보다 50%나 넓다. 중국이 2008년 미국 워싱턴에 건립한 중국대사관(연면적 2만3,230㎡)에 이어 해외 중국대사관 건물 중 두 번째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은 지상 2층까지 한 동으로 올라가고, 3층에서 갈라져 10층짜리 업무동과 24층짜리 숙소동이 건립된다. 숙소동은 전용 57㎡ 9가구, 89㎡ 33가구, 115㎡ 2가구, 126㎡ 8가구 등 총 52가구이며, 체력단련장과 이ㆍ미용실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업무동에는 수영장도 들어선다. 건물 옥상엔 중국식 지붕이 씌워지고, 건물 앞에 중앙광장과 분수, 산책로 등도 만들어진다. 공사비는 총 312억원. 최근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인민의 혈세를 낭비해가며 수영장까지 딸린 호화 초고층 대사관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건물 내부구조와 시설 등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중국 정부가 보안문제 등을 우려해 중국 건설업체에 시공을 맡긴데다 현장 근로자도 상당수가 중국 현지 인력이다. 특히 대사 집무실 등 주요 업무시설 공사는 대부분 중국 근로자들이 담당하며, 보안과 관련 없는 단순공사 부분만 한국 근로자에게 맡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건설 자재도 중국에서 직접 공수해왔다.
중국은 주미 중국대사관을 지을 때도 철근 등 기본 자재를 본토에서 공수해다 썼을 만큼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한반도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 강국이 치열한 정보전을 벌이는 전략적 요충지"라며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상대국의 도청을 막기 위해 본국에서 특수 제작한 자재들을 반입해 공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중국식 외형을 갖춘 고층 대사관이 우리나라 상권의 상징과도 같은 명동에 들어선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명동에서 의류점을 하는 조모씨는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명동에 적대국이던 중국이 가장 높은 건물을 짓는다니 좋아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며 "청나라가 내정간섭을 하던 구한말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했다. 건설업체 관계자도 "외교공관의 경우 현지 문화 및 주변 환경을 고려해 짓는 게 일반적인데, 중국대사관은 24층짜리 초고층 빌딩인데다 중국식 지붕을 덮을 예정이어서 서울의 중심부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명동 중국대사관 자리는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주둔지로 사용되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수교를 맺은 대만이 대사관을 지어 사용했다. 1992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건물 소유가 중국으로 넘어갔으며, 2001년 말 대사관 신축계획이 발표되면서 중국대사관은 효자동으로 임시 이전했다. 하지만 예산 확보의 어려움으로 공사계획을 연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8년 서울시 건축허가를 받고 이듬해 착공에 들어가 올해 말 준공을 앞두고 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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