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고려대 탈춤 동아리 '탈 사랑 우리'는 지난해 2월 서울 안암캠퍼스 학생회관에 있던 동아리방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동아리를 유지하려면 최소 3개 단과대학에 걸쳐 회원이 20명 이상 가입해 있어야 하지만 이 동아리에는 2009년 신입생 1명이 가입한 뒤 아무도 새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유신체제 말기에 정권을 풍자하는 마당극을 준비하다 동아리 등록 무산 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았고, 1980년대 후반에는 회원이 100여명을 웃돌기도 했던 동아리가 결국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문을 닫게 된 것이다.
'탈 사랑 우리'와 같은 해에 결성된 성균관대 탈춤 동아리 '성균민속연구반 탈'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 대학의 중앙 동아리는 회원이 15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지난해엔 신입생 5명 들어와 간신히 15명을 채웠지만 이후 신입생이 1명만 남고 모두 탈퇴, 올해 동아리 심사 때 신규 동아리에 방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그나마 동아리 활동도 졸업한 선배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탈춤이나 민속악기 강습을 하며 겨우 이어가는 실정이다.
조선시대 전통 무예를 배우는 연세대 동아리 '전통무예 십팔기 연구회'도 지난해 신입생 부족으로 결성 25년 만에 해체됐다. 연세대 정문호(정치외교학과 4년) 동아리연합회장은 "전통문화 관련 동아리의 쇠퇴는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며 "살아남은 동아리들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학가에선 이처럼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학술 동아리나 전통문화 동아리는 사라지는 반면 클럽댄스, 힙합, 재즈, 사진 등 문화예술 관련 동아리들은 점점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중앙대 윤인원(민속학과 3년) 동아리연합회장은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댄스, 힙합 동아리"라며 "취미로 쉽게 배우고 놀 수 있는 동아리에는 신입생들이 매년 30여명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입생 때 학술토론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스노보드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이모(24ㆍ중앙대 경제학과 4년)씨는 "군대 제대 후 학점, 영어, 취업 등 현실적인 걱정이 많아지면서 동아리에서라도 잠시 현실을 벗어나 고민없이 놀고 싶어서 찾았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과거 대학생들은 잊혀져 가는 전통을 복원하는 등 고유문화를 지키고 동시에 자본으로부터 분리된 대학생만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했지만 지금 대학은 외부의 대중문화와 동질화되면서 '대학문화' 자체가 사라졌다"며 "그런 흐름에 따라 전통문화 동아리들도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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