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결국 이란산 원유의 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도 EU의 원유 금수 방침 결정 직후 이란 최대 민간은행에 대한 추가 금융제재를 발표하는 등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서방의 압박이 전방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EU는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하거나 구매하는 신규 계약을 즉각 중단하고 기존 계약도 7월 1일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금수 조치에는 이란산 석유화학 제품의 수입 및 석유화학 기술ㆍ장비의 이전도 포함됐다. EU는 또 이란 중앙은행의 자산을 동결하는 한편 이란 공공기관과의 금, 다이아몬드, 귀금속 거래 등도 전부 금지시켰다.
캐서린 애쉬턴 EU 외교ㆍ안보 고위대표는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 위험성을 감소시키고 이란을 협상테이블로 이끌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이날 이란 3위 은행이자 최대 민간 금융기관인 테자라트은행을 추가 제재 대상에 올리며 EU 제재에 힘을 보탰다. 데이비드 코언 미 재무부 테러ㆍ금융정보담당 차관은 "테자라트은행은 국제금융시스템과 연결되는 이란의 몇 안되는 연결고리 중 하나"라며 "핵개발에 필요한 자금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유 금수 조치의 파급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그 동안 금융거래 차단에 주력해 왔던 EU가 제재 범위를 실물(석유)로 확대한 것은 이란 경제에 실질적 타격을 주기 위해서다. 이란이 정부 수입의 70%를 석유에 의존하고 EU 수출 물량이 전체의 20%에 달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양한 대응 카드를 갖고 있는 이란의 움직임이 변수다. 이란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원유수입 금지와 같은) 부당한 제재와 협박은 실패로 끝날 것"이라며 핵개발 강행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권리가 있다"(헤쉬마톨라 팔라하피셰 의원)며 무력 대응 방침을 거듭 시사했다.
이란이 변동성이 큰 국제 유가의 특성을 활용할 가능성도 크다.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은 석유부 성명을 인용해 "EU의 원유수입 금지 결정은 성급한 것"이라며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령 이란이 EU가 대체 수입처를 확보하기 전에 원유 수출을 전면 중단하면 원유가격이 급등해 석유시장은 혼란에 휩싸이고 제재의 효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국제 유가는 이날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지난주 종가보다 1.3% 오르는 등 상승 마감해 걸프지역 긴장 고조에 따른 불안감을 반영했다.
BBC방송은 "이라크와 리비아 정권의 몰락을 목도한 이란 지도부는 핵무기를 국가 안보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하고 있다"며 "유가 추이를 보며 당분간 경제적 고통은 기꺼이 감수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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