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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풍찬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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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풍찬노숙'

입력
2012.01.2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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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훨씬 전부터 누군가는 기대작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문제작이라 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화제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는 이야기다. 2006년 극작가로 등단해 2008년 두 번째 작품인 4시간 30분짜리 연극 '원전유서'로 한국 연극계를 뒤흔든 김지훈(32)씨는 어느새 연극계가 주목하는 주요 인사로 성장했다.

18일 개막한 연극 '풍찬노숙'은 김씨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남산예술센터가 그를 상주극작가로 선정해 1년간 지원하고 올해 첫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공연 시간은 3시간 50분(쉬는 시간 포함)으로 '원전유서'보다는 짧지만 평균적인 대학로 연극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되는 방대한 분량이다.

바람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큰 뜻을 이루려 고초를 겪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주인공은 한국과 아시아계 혼혈인인 코시안에서 모티프를 딴 '순대빛깔 피부의 혼혈족'이다. 연극은 피부색에 따른 차별로 사회적 존재로 각인되지 못하는 혼혈족이 하나의 민족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민족의 역사적 출발선인 건국 신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시대의 오류를 인지하면서도 체념한 듯 자학의 소리를 늘어놓는 응보(윤정섭)와 혁명의 목소리를 높이는 문계(이원재)가 중심 인물이다.

"얼굴은 마이클인데 이름은 응보"인 혼혈족들이 모여 사는 반도 땅 어느 언덕이라는 무대의 배경은 관객에게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다. 하지만 혼혈에 대한 차별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현재진행형인 까닭에 조만간 겪게 될 현실일 수도 있는 내용이다. 작가는 특별한 논리가 없어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야기의 형태인 '신화'를 앞세워 이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셈이다. 신화를 표방하기에 죽은 자와 산 자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고어와 현대어가 뒤섞인 대사는 때로 사변적이다.

전작에서 극중 캐릭터들의 관념적인 대화를 통해 관객이 끊임없이 사유하게 했던 작가의 장점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가장 길게는 한번에 15분을 훌쩍 넘는 긴 대사를 통해 작가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혼혈 차별 문제뿐 아니라 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파괴되는 인간성 등 현실 비판의 목소리를 폭풍 같이 쏟아냈다. 응보 역의 윤정섭과 주워먹는 그애 역의 김소진이 보여 준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연기의 조화도 인상적이다.

이야기에 비해 무대의 상상력이 크게 빛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경사가 급한 객석을 언덕을 형상화한 무대로 꾸미고 객석은 기존의 무대에 마련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지만 신화의 느낌을 잘 살리지는 못했다. 2월 12일까지. 연출 김재엽. (02)758-2150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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