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공연이 어떨지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는데 다 쓸데없는 기우였어요. 리허설 참관 10분 만에 한국인 배우들이 러시아 젊은이들로 보였으니까."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연출가로 개막 전 최종 점검을 위해 방한한 데스 맥아너프(59)씨는 인터뷰 내내 들떠 있었다. 한국 호주 미국 3국 프로듀서의 공동 프로젝트인 '닥터 지바고'는 지난해 2월 호주에서의 초연에 이어 27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한국어 버전으로 무대에 오른다.
맥아너프씨는 1960년대 팝스타 프랭키 밸리와 포 시즌스의 이야기를 그린 주크박스 뮤지컬 '저지 보이스(Jersey Boys)'의 연출가로 유명하다. 22일 만난 그는 "한국 방문이 처음이고 '닥터 지바고' 출연진이 모든 한국 배우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정도로 뮤지컬에 대한 열정과 사랑, 끼가 넘치는 배우들이 있는 한국 뮤지컬계의 미래는 무척 밝아 보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닥터 지바고'는 최근 배우 조승우가 뒤늦게 주인공으로 합류하면서 대중적 인지도가의 부쩍 높아졌지만 뮤지컬 관계자들은 제작진의 면면을 보고 일찌감치 이 작품에 관심을 보여 왔다. 특히 맥아너프씨는 토니상 연출상을 두 차례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 받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연출가로, 캐나다의 세계적인 연극 축제 '스트랫포드(Stratford)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기도 하다. 3월에는 그가 연출한 새 버전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다.
그는 "새 뮤지컬에는 항상 합당한 창작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대중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든지 하는 분명한 당위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죠." 그는 "'닥터 지바고'는 아름다운 노래로 구현될 수 있는 작품이어서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혁명으로 특정해서 그렇지,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에 휘말려 사랑을 지키고자 애쓰는 젊은 남녀의 삶은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죠. 그래서 광대한 러시아 풍광의 구현보다는 한 여자(라라)를 사랑하는 세 남자(유리, 파샤, 코마로브스키), 한 남자(유리)를 사랑하는 두 여자(라라, 토냐)의 감정과 선택이 잘 보이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연출했습니다."
극작가와 작곡가로 활동하다 자연스럽게 연출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뮤지컬뿐 아니라 오페라와 영화, 애니메이션도 연출했다. "장르마다 강조되는 기술이 조금 다를 수 있어도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하는 점에서는 공통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대표작 '저지 보이스'를 설명할 때도 "노래에 이야기를 끼워 맞춘 게 아니라 가수의 일대기를 그리다 보니 그들의 노래가 들어간 것"이라며 "주크박스 뮤지컬로 칭하기보다는 스토리텔링의 한 방법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뮤지컬은 대중을 위한 예술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 단순히 인기가 있을 것 같은 노래들의 집합체로 만든 뮤지컬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맥아너프씨는 "여러 장르를 경험했지만 많은 요소들을 한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종합해내야 하는 뮤지컬 연출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공연예술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지만 콘텐츠가 무한 복제되는 디지털 시대야말로 공연예술이 각광 받을 시기죠. 순간에만 존재하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점점 더 귀해질 테니까. 내가 너무 시대착오적인가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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