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대통령선거를 앞뒀던 2002년7월27일 제주도 신라호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마련한 하계세미나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후보가 나란히 연사로 나란히 참석했다. 기업인들이 모인 장소인 만큼 두 후보 모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강연이 진행되면서 두 후보는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후보는 규제철폐와 관치타파 등을 통한 시장경제구현을 강조, 기업인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노 후보는 규제 및 준조세 혁파를 강조하면서도 "출총제는 재계가 불편해하는 것은 알지만 당분간 유지해야겠다고 말했다. 성장과 분배에 대해서도 이 후보는 "성장하지 못하는 경제는 희망이 없다"면서 성장에 방점을 찍은 반면, 노 후보는 "(성장도 중요하지만) 다른 후보보다 분배문제를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강연 이후 기업인들에겐 '이회창(한나라당)=친기업' '노무현(민주당)=반기업'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각인됐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민주당 정동영 후보가 겨룬 17대 대통령선거도 대기업정책 측면에선 '친기업 대 반기업'구도였다. 기업인 출신의 이 후보는 노무현정부에 대한 재계의 거부감을 잘 알고 있었고, 성장주의의 상징인 '747(7%성장-4만달러 소득-7대 경제대국 달성)'을 강조하면서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 폐지 등 구체적인 기업친화적 정책을 내걸었다. 이에 비해 정 후보는 이 후보의 공약을 '재벌편들기'로 규정, 친서민 기조를 강화하겠다고 맞섰다. 이 후보의 정책기조가 워낙 대기업에 기울어있던 탓에,'친기업-반기업'의 대결구도는 17대 대선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오는 12월 치러질 18대 대선은 이 같은 '친기업-반기업'의 대결양상이 10년 만에 깨질 전망이다. 여야 모두 '친서민'을 강조하고 있는데다,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재벌 규제를 공공연히 얘기하고 있는 탓이다. 한 재계관계자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친기업이냐 반기업이냐의 대결이 아니라, 누가 더 강한 반재벌인가의 경쟁으로 흐를 것 같다"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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