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여당까지 재벌규제를 얘기할 줄은 몰랐습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재벌의 사익추구를 비판하며 '출총제 보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자, 재계인사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야를 막론한 반(反)재벌 공세가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얼마나 확대재생산될 지 가늠조차 힘들다는 반응들이다.
사실 재계는 MB정부에 대해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는 상태. 대선후보시절부터 '친기업'노선을 표방했고, 집권 초 '비즈니스 프렌들리' '규제의 대못 제거' 등을 강조했기 때문에 역대 어느 정권보다 MB정부에 대한 기대는 컸다. 하지만 집권 중반 이후부터 정권 캐치프레이즈가 '친기업'에서 '친서민'으로 바뀌고, 동반성장의 명분 아래 재벌에 대한 압박강도가 커지면서 재계 인사들은 공공연히 "이 정부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A그룹 임원은 "노무현정부는 재벌에 대해 정서적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책 자체는 친기업적인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가장 기업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책들은 반재벌성향이 오히려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사재출연 압박, 일감몰아주기 과세, 기름값 강제인하 등을 꼽았다.
이런 와중에 여야가 한 목소리로 재벌규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벌써부터 포퓰리즘 성향의 정책들을 쏟아내자 재계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선거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수록 공약의 수위는 점점 더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는 만큼, 앞으로 더 센 규제, 더 강한 압박이 나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출총제는 이미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난 제도 아닌가.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시점에 출총제의 유령의 되살아나는 게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출총제 자체가 두려운 건 아니다. 출총제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대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고 결국 재벌규제가 어떤 형태로든 강화될 것이란 신호이기 때문에 그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재계는 두 차례 선거를 통해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반기업'쪽으로 흐르는 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B그룹 관계자는 "기업이 고쳐야 할 것은 고치겠지만 정치권에서 표를 의식해 이런 식으로 몰고 가면 결국 대기업 전체가 '나쁜 놈'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면서 "이는 투자와 고용창출을 방해하고 결국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은 이와 관련, 올 대선에서 포풀리즘 및 반기업 공세에 재계가 공동대응하고 기업친화적인 후보와 정당을 공개지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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