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1.5% 일률 적용 방안이 역풍을 맞고 있다. 카드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금융정책당국이 잇따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영세상인 등 서민대책으로 포장됐지만 자칫 다른 서민(카드 이용자)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오히려 대형 가맹점들만 반사이익을 누릴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카드 수수료 인하 요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특히 양대 선거가 치러지는 해라는 점에서 카드사들도 어느 정도 양보할 자세가 돼 있다. 그래서 더욱 획일적인 수수료 규제보다 영세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영업자 표심 잡기에만 급급해 설익은 대책을 강행한다면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번 대책이 반(反)시장적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수수료가 카드 서비스에 대한 일종의 가격이란 점에서 정치권이 상품의 가격을 규제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우 단국대 신용카드학과 교수는 "가격통제 정책은 항상 효과보다 부작용이 크다"며 "카드사들 간의 서비스 향상 경쟁은 사라지고, 줄어드는 수수료 수익을 메우기 위한 외형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맹점 무차별 확장, 정산금액 지급주기 연장 등 각종 편법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가맹점의 현금유동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카드 가맹점의 부담을 일반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현재 신용카드 수수료 평균은 1.99% 수준, 이를 일괄적으로 1.5%까지 낮추면 카드사 수익이 1조6,000억원 가량 줄어들게 된다. 카드사는 줄어든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공공연히 밝힌 바대로 카드고객에 대한 각종 부가서비스 축소 외에도, 연회비 인상,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 대출이자 상승, 결제기간 단축 등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수수료 원가 개념조차 정립하지 않은 카드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결국 소비자 혜택이 줄 수밖에 없어 또 다른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1.8%(영세 및 중소가맹점)가 마지노선이라고 못박은 상태다.
카드업계들은 선거를 의식해 성급한 대책을 남발하는 여당에 대해 서운한 눈치다. 이미 카드업계가 자발적으로 다음달 중 추가인하를 포함한 수수료 체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한나라당이 이를 기다려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대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만약 이번 대책이 실현된다면 30만~40만 가맹점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주로 혜택은 중대형가맹점과 유흥업소에 집중돼 오히려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유흥 및 사치업종과 사채업종 등의 카드 수수료는 최대 4.5%로 높다. 반면 전체 카드가맹점의 70% 정도인 매출 2억원 미만 가맹점이 이미 수수료 1.8%로 인하 혜택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나라당 안대로 1.5%로 일괄 인하 한다고 해도 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금융당국도 사회적 요구라는 한나라당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합리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신용카드는 기본적으로 이자나 결제대행업체 수수료 등 비용이 많이 드는 결제수단이기 때문에 수수료가 낮은 체크카드 사용 비중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서민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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