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317호 법정. 형사17단독 김세종 판사 심리로 열린 신대식(61) 전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 제8차 공판에 산업은행 부총재 출신인 김종배(62) 법무법인 광장 고문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신씨는 2006년 5월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으로 영입됐다가 2008년 10월 징계해고된 후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해고가 청와대 지시에서 비롯됐다고 주장,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과 이 회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해 5월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가 이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것은 그가 신씨 주장의 진위를 가려줄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본부장 출신인 신씨는 "2008년 8월 김종배 당시 산은 부총재가 전화를 걸어 '청와대가 대우조선해양에 3명을 보내려 한다는데, 남상태 사장은 종전에 외부에서 영입된 3명을 내보내겠다고 하니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신씨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하고 있으나, 실제 2008년 9월(당시 신씨는 대기발령 상태) 한나라당 인사 3명이 이 회사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31.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김씨는 그런데 이날 증인 선서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신씨 해고와 관련된 모든 증언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산은 임원은 공무원에 해당하며 공무원은 직무상 얻은 정보를 누설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황한 재판부는 법전을 검토한 뒤 "산은 임원을 공무원으로 보는 것은 형사처벌의 경우에 국한되고, 공무원의 증언 거부도 대상이 '비밀'일 때에만 허용된다"며 증언을 권했다.
신씨의 변호인은 "권력기관에 의한 부당 해고가 사건의 본질인데, 고위 공직자 출신이자 유명 로펌 고문인 증인이 사법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검찰도 "변호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려면 증인의 증언이 꼭 필요하다"고 촉구했으나, 김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산은과 대우조선의 관계, 친구 사이인 나와 신씨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신씨 해고과정에 대해 내가 안다, 모른다 말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재판부는 결국 김씨에게 과태료 최고 한도인 50만원을 부과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김씨의 증언 거부로 인해 재판부로서는 신씨 해고 과정에 무언가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27일 열리는 다음 재판에서 남상태 사장을 직접 증인으로 부를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남 사장과 신씨 간에 법정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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