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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고향, 고향,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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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고향, 고향, 고향

입력
2012.01.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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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다.

설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고 정겨운 이웃을 만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 가는 성스러운 여정이다. 때묻고 지워졌던 자기 냄새를 다시 맡아 보고 그 냄새 나는 얼굴을 다시 바라보고 소중히 여기는 시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자란 땅, 내 부모가 태어난 땅.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늘 그 자리에 있는 어머니 품과 같은 그곳을 본능적으로 그리워한다.

그 품에 안기고 싶어 고향의 흔적을, 사람의 흔적을 찾아 간다. 고향은 아픔과 더러움과 서러움마저 눈물 나게 만드는 곳이다.

나는 실향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과 전쟁, 분단의 상처를 가득 안은 내 부모님들의 삶은 이 땅 현대사의 바로미터다. 굶주림과 추위, 유랑의 세월이 주름살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슴에 담고 사셨다.

철없는 시절 나는 그네들의 가난과 풍파가 싫었고, 애써 모른 척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피는 피로 흐른다고 내 부모의 아픔과 그리움이 나의 피와 살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실향의 땅 부모가 나를 만들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진정한 고향은 내 아버지가 태어나신 평안북도 정주.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적적한 유년 시절, 명절이 되면 어디든 갈 곳이 없었다. 친척도 없고 성묘를 가야 할 그 어느 산자락도 내게는 없었다. 단지 텅 빈 동네에 흐르는 적막과, 주인 없는 집들의 간간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홀로 빈 방에서 낮술을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 뿐. 그것이 내 기억 속에 서울의 명절이었고 설날이었다.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제는 그 심심한 명절의 풍경조차 그리워지곤 한다.

흔히들 말하는 귀성행렬은 내게는 먼 이야기이다. 어느 나라 사람들은 해마다 설이 되면 며칠에 걸쳐 고향에 간다지. 나도 그렇게 몇 일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모님의 고향 땅에 가고 싶지만 한 번도 그럴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부모의 땅을 찾아가는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순리인데,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도시에서 자라온 내 아이들에게는 고향이라는 개념이 이미 없어져 버렸다. 나는 어떤 고향을 물려 줄 수 있을까. 포근함과 그리움, 결핍과 혹독함이 묻어나는 흙의 내음을 맡아 보지 못한 이 아이들에게 괜시리 아비로서의 죄스러움이 든다. 나보다도 더 건조하고 무미한 명절을 대물림 한 것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나의 책임이다.

이 땅은 어느 날 날개를 잃어버렸다. 어느 순간, 갈등과 이기심으로 우리는 우리를 벽 속에 가두고 있다. 우리는 병 속에 갇혀 있다. 병안의 우리는 밖을 본다고 자부하지만 안개낀 날, 먼지가 뿌연 날, 우리는 밖을 볼 수 없다. 병은 안에서 닦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분단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조선 팔도의 이웃들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더 비참한 일은 이러한 비대칭 구조에 사람들이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보지 못하고 사람이 땅과 산천을 잃어 버렸다. 미디어가 주입하는 편가르기에 길들여진 비극을 어디서부터 진단해야 할 것인가. 똑같이 음력 설을 쇠는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모른다. 아니, 알 수도 없다. 땅의 왕래, 사람의 왕래, 마음의 왕래, 소통의 단절은 어느덧 우리 땅의 문화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정주. 비록 두 발로 밟아 보지 못 한 땅이지만 언젠가 그 곳에 가는 꿈을 꾼다, 내 아이들과 함께. 느릿느릿 낡은 열차를 타고. 저녁노을 연기나는 작은 마을의 평범하고 정겨운 이웃들을 상상한다.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들도 그려본다. 정주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함께 설빔을 하고 떡국을 먹으며 우리 옛 어른들이 해 왔던 새해의 정을 나누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러나 기다려야만 한다. "고향에 가고 싶다." 이 모든 염원을 빌고 또 빌지만 올해도 쓸쓸한 설이 될 것 같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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