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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다시 희망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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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다시 희망을 노래하자

입력
2012.01.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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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이 반갑다. 새해의 결심을 또 한번 다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한 해를 맞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믿음의 샘이 터지고 희망의 횃불이 타올라야 한다. 새 아침을 맞는 사람에게 기대와 설렘이 있어야 하듯, 새 해를 맞는 사람에게는 꿈과 비전이 꿈틀거려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믿음의 샘이 솟아나야 한다. 믿음이 곧 희망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곧 능력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눈 앞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지금 내 눈 앞에 보이지 않고 지금 내 손에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지만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믿음은 현재가 오히려 허상이고 미래가 도리어 실상임을 깨닫는 일이며, 보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보이는 것들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세상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확신하는 태도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 남북관계도 또 다른 갈림길에 들어섰다. 세계 경제의 흐름은 여전히 낙관할 수 없고, 실업의 고통도 힘든 과제다. 이땅에 사는 누구도 희망을 노래하기가 편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희망을 말해야 하고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그래야 하고 세상이 힘들수록 그래야 한다. 언제 한국이 만만하게 한 해를 시작한 때가 있었던가. 근대사에 대체 언제 힘겹게 한 해를 맞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어렵고 힘든 역사의 뒤안길에서 소리 없이 제 몫을 다한 이들을 보라. 대단하지 않은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식민지배를 겪고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이루었으며 반세기 만에 개발도상국의 위치를 벗어났는가. 세상의 어느 나라가 분단의 아픔 속에서 이토록 변변한 자원조차 없이 선진국 반열에 이르렀는가. 누구 때문이고 무엇 때문인가. 답은 하나다. 온 국민이 희망을 품었고 그 희망을 함께 노래한 때문이다.

나는 쉰 셋에 다시 신학의 길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공부 마치고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 나이에 공부 마친 후에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아침에 졸업장 받고 저녁에 은퇴해야 할 나이가 아닌가."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 밤 생명이 다한다면 오늘 낮 동안 무엇을 하기를 원하나. 내가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일은 무엇이며, 인생을 걸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세상이 원하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깊은 내면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망은 무엇인가. 비록 그 소망을 확인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확인한 순간 내 인생에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자리를 떠나는 결정은 힘들지 않았다. 내 가슴에 새로운 희망이 싹텄고 꺼지지 않는 열정은 희망의 노래가 되었다.

희망은 그러나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간다. 희망은 기꺼이 안주의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 광야의 삶은 힘들고, 예측하기 어려우며, 때로 눈앞을 분간할 수 없는 모래폭풍을 만난다. 언젠가 카이로에서 또 아부다비에서 만난 모래폭풍은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혼돈은 질서가 있어 혼돈이고, 어둠은 빛이 있어 어둠이고, 고난은 축복이 있어 고난이다. 광야의 삶 곳곳에는 숨겨진 축복이 있다. 가지 않고서는 알 수 없고, 겪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는 축복이다. 타는 목마름을 축이는 샘이 있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덮는 구름이 있고, 서로 어깨를 감싸주지 않고 걸을 수 없는 한기가 있다. 광야의 터널 끝에 이를 때 비로소 우리는 바로 희망이 축복의 씨앗임을 깨닫는다. 고난이 바로 위장된 축복임을 깨닫는다. 이미 내 눈 앞에 보이면 희망일 수 없다. 이미 내 손 안에 쥐었다면 사실에 불과하다. 희망은 눈 앞에 보이지 않아서 희망이고 손에 아무 것도 없어서 희망이다. 다시 새해 새 희망을 노래하리라. 새벽을 깨우고 새벽을 달려 가리라.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만큼 세상의 절망은 멀어지고, 함께 달려가는 만큼 희망은 가까워지리라.

조정민 온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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