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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의혹을 팝니다' 과학자의 탈을 쓴 기업의 용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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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의혹을 팝니다' 과학자의 탈을 쓴 기업의 용병들

입력
2012.01.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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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을 팝니다/나오미 오레스케스, 에릭 콘웨이 지음·유강은 옮김/미지북스 발행·626쪽·2만5,000원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산성비는 유독한 배기가스가 아니라, 화산 폭발 탓이다." "지구온난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저자들의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모두 틀린 주장이다. 흡연은 각 종 암의 원인이다. 대기오염은 산성비를 내리게 한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0.74℃ 올랐다. 온실가스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설명이 과장됐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과학자다. 그리고 같은 사람들이다. 지구온난화, 산성비 등 여러 환경 논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담배가 무해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란 얘기다.

<의혹을 팝니다> 는 이들을 과학의 탈을 쓰고 가짜 과학을 팔아 온 '의혹의 상인'이라고 규정한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과학이 갖는 두 가지 특성(불확실성, 객관성)을 교묘하게 비틀어 논란을 키운다. 가령 담배가 암 발병의 원인이라는 것에 대해 모든 흡연자가 암을 앓진 않는다는 논리로 의혹을 만든 다음, 담배가 해롭지 않다는 엉터리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식이다. 동시에 기업 등 이익단체의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은 깊숙이 감춘다. 기업의 용병이란 게 알려지면 과학자라는, 자신의 권위에 금이 갈 테니까.

미국 캘리포니아대 과학사 교수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캘리포니아공대 역사학자 에릭 콘웨이는 담배의 위해성, 산성비의 효과, 오존구멍의 존재, 지구온난화 등 이미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에 사람들이 왜 의문을 갖게 됐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며 짚어간다.

이 오랜 '사기극'은 1950년대 담배의 위해성 논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뉴욕 슬론케터링연구소에선 담배의 주성분인 타르를 쥐 피부에 발랐더니 암이 발생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담배 업계는 담배산업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연구비 수천만 달러를 퍼부었고, 이름 있는 과학자들을 참여시켰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프레드릭 사이츠와 프레드 싱어다. 사이츠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과학 고문, 미국국립과학학술원장, 미국 록펠러대 총장을 역임했다. 싱어는 레이건 정부에서 교통부 수석과학자문위원을 지낸 로켓과학자다.

책에 따르면 그들은 베트남전 반대 등 당시 과학계의 진보적인 분위기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이 편협한 사고에 빠졌다고 여겼다. 그래서 흡연이 해롭다는 비판이 비이성적이란 담배 업계의 주장도 받아들였고, 이후 오랜 시간 '가짜 과학'을 퍼트렸다. 담배 업계는 계속 돈을 벌었고, 대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담배는 미국에서 2009년에서야 중독성 약물로 분류됐다. 이후에도 이들은 산성비, 지구온난화 등에서 끊임없이 비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했다.

저자들은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을 두고도 대중이 혼란에 빠지게 된 이유로 언론을 지목한다. '의혹의 상인'은 반대 의견도 실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언론의 불편부당성을 이용,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마치 과학적 논쟁의 한 쪽 주장인 것처럼 보도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양심을 버린 많은 과학자가 대중 앞에 서서 의심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결코 합리적인 게 아니며, 그들에게 의심은 상품과 같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거짓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 앞에 먼저 내놓은 주장이 아닌, 여러 검증을 거쳐 다른 과학자도 인정한 연구결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과학과 친해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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