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출자총액제한제(이하 출총제) 보완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책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출총제 부활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반면, 이미 출총제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통합당은 끝까지 밀어 부칠 기세다. 여야 모두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지만, 유효한 수단이 뭔지를 두고는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출총제란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액의 일정 비율을 초과해 국내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1986년 처음 도입됐지만, 그간 ‘과도한 규제로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반발에 부딪쳐 완화→폐지→부활→재완화 등의 우여곡절 끝에 2009년 다시 폐지됐다.
최근 출총제 보완 또는 부활이 다시 거론되는 이유는 대기업의 몸집 불리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 지난해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사에 따르면 15대 그룹 계열사가 2007년 이후 4년 만에 65%나 급증했다. 늘어난 계열사의 4분의 3(74.2%)은 전통적인 주력업종이 아닌 비제조ㆍ서비스업에 집중됐고 그나마 중소기업이 주로 맡는 이른바 ‘중기 적합업종’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재벌가 2,3세들이 빵집, 커피전문점 같은 소매업종에까지 공격적으로 진출해 동네상권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동네 빵집은 2003년 초 1만8,000개에서 최근 4,000여개로 70% 넘게 줄어들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 출총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에선 “대기업들의 이런 행태가 출총제 폐지 이후 본격화했다”며 “상징적 의미에서라도 출총제 부활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출총제가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어렵다는 반론도 많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대기업그룹은 대상에서 제외돼 실제 적용대상이 삼성, 현대차 등 4~5곳에 불과하고 이들의 출자총액 규모도 순자산의 20%(폐지 전 기준선은 최대 40%까지 허용)를 넘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계열사를 더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당 내부에서는 출총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책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20일 정책쇄신분과회의를 갖고 향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폐해 방지 ▦하도급제도 전면 혁신 ▦프랜차이즈 불공정 근절 ▦덤핑입찰 방지 ▦연기금의 주주권 실질화 등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키로 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 중인 ‘성과공유제’도 함께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이번 정권 들어 시도나 논의는 있었지만 본격 시행에는 실패한 정책들이다.
정부 역시 출총제 부활에는 반대하지만 ‘재벌 규제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출총제 부활이나 법 전면개정 같은) 아날로그 식 접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총제의 실효성이 낮아 폐지한 만큼, 대기업에 대한 사후감시와 정보공개 및 규제 등을 강화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의미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수출 위주 정책으로 대기업들이 자산은 불렸지만 실패를 지나치게 우려해 동네 빵집 같은 안전 위주 투자에 주력하는 게 문제”라며 “금지 위주의 규제보다는 첨단산업 등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도울 제도가 더 현실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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