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도가니였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 없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돼 기쁘다."
100년 전 타이타닉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 이탈리아 호화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좌초 사고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한국인 34명 중 18명이 19일 귀국했다. 이날 오후 6시30분 이들을 태운 대한항공 KE928편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입국장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3일 유람선 좌초 사고 후 30시간 만에 구조된 29세 동갑내기 신혼부부 한기덕, 정혜진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한씨는 "잠에서 깨니 배가 기울어 있었고 복도로 빠져나갔지만 경사가 너무 심해 미끄러져 다치기도 했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되새겼다. 정씨는 "객실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고 밤낮을 구별했다"며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고 구명조끼에 달린 호루라기를 불며 구조를 기다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과자 몇 조각과 물 두어 모금으로 긴 시간을 버텼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고 했다. 경기도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각각 물리와 수학을 가르치다 만나 지난 7일 결혼한 이들 부부는 "추웠지만 함께 있어서 두려움을 견딜 수 있었다"며 웃었다.
언니와 함께 13박 14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난 백미혜(20ㆍ대학생)씨는 "갑자기 유람선이 기울어져 침대에서 미끄러졌고 암흑상태가 됐는데도 승무원들은 그냥 잠시 정전된 것이며 자주 있는 일이라는 식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인과 아들 셋, 처제 가족과 함께 7박 8일 일정으로 유람선 여행에 나섰던 송문희(46)씨는 "바닷물이 갑자기 배 안으로 들어와 내복차림에 구명정을 탔다"며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구조된 후 로마 인근 호텔에 분산돼 휴식을 취했던 이들의 건강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듯했다. 윤갑석 주 이탈리아대사관 공사는 "30시간 만에 구조된 한씨 부부는 헬기로 가까운 병원에 옮겨져 건강검진을 받았다"며 "몸에 이상은 없었으나 오랫동안 선체에 갇혀 있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지만 잘 회복했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승객과 승무원 등 4,200여명이 승선했던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는 지난 13일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 질리오 섬을 지나다 암초에 부딪혀 좌초, 현재까지 11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실종된 상태다.
인천공항=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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