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차기 대표회장 선거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초 대표회장 선출 과정의 ‘금권선거 논란’으로 시작된 내홍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한기총은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원동 왕성교회에서 길자연 현 대표회장의 뒤를 이을 차기 대표회장을 선출하려다 이날 대표회장을 뽑지 말라는 법원의 결정에 제동이 걸렸다. 앞서 한기총 집행부에 비판적인 예장 통합과 대신, 고신, 합신, 개혁 등 5개 교단 100여명의 대의원들은 대표회장 투표권을 빼앗기자 이에 반발해 서울중앙지법(민사 50부)에 한기총 총회 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차기 대표회장 후보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교단이 선출한 홍재철 부천 경서교회 목사가 단독 입후보한 상태다.
60여개 교단으로 구성된 한기총은 현재 길 대표회장과 차기 대표회장 후보인 홍 목사 등 예장 합동 목사들로 이뤄진 집행부와 예장 통합 등 11개 교단이 참여한 ‘한기총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로 쪼개져 갈등을 빚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대표회장 선출과 관련한 한기총 정관을 둘러싼 시비다. 지난해 초 대표회장 선거가 금권선거로 치러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7월 특별총회 때 대표회장을 각 교단에서 돌아가며 선출하도록 정관을 고쳤다. 이 같은 ‘대표회장 순번제’는 같은 교단에서 연속해서 대표회장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고육책이지만 다수의 교단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이 개혁 정관이 한기총 집행부에 의해 폐기되면서 새로운 갈등이 불거졌다. 길 대표회장이 같은 교단 소속 홍 목사를 후임으로 앉히기 위함이었다. 이에 반발해 최근 예장 통합을 비롯해 백석, 대신, 고신, 합신, 개혁, 예성(예수교 성결교회), 기성(기독교 성결교회) 등 11개 교단은 비대위를 구성해 현 집행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비대위가 홍 목사를 비토하는 이유는 그가 이른바 ‘한기총 금권선거 논란’의 주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최요한 남서울비전교회 목사는 “2010년 9월 예장 합동 교단의 한기총 대표회장 후보 경선을 하루 앞두고 길자연 목사로부터 돈을 건네 받아 내가 1,400만원, 홍재철 목사가 3,000만원 정도를 총대(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대의원)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폭로했다.
홍 목사는 현재 한기총 공동회장 및 한기총 가입단체인 북한옥수수심기범국민운동분부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또한 한기총 다빈치코드상영반대특별대책위원장, 수쿠크(이슬람채권)법 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비대위 소속 800여명의 목회자들은 12일 서울 연지동 연동교회에서 기도회를 열고 홍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 부적격자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18일 오후에는 예장 통합 총회장 박위근 목사와 예장 백석 총회장 유중현 목사 등이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기총 정기총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기총이 조만간 법적 요건을 갖춰 총회를 열고 홍 목사를 차기 대표회장으로 선출한다 해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비대위와의 갈등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비대위측 한 목사는 “홍 목사가 차기 대표회장에 당선돼도 법원에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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