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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음식 - 함경도가 고향이세요? 녹말국수·가자미식해… 명절상 차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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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음식 - 함경도가 고향이세요? 녹말국수·가자미식해… 명절상 차렸어요

입력
2012.01.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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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 푸짐하게 차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녹마국수(녹말국수의 함경도 사투리)와 두부 조각 동동 띄운 가릿국밥, 노릇하게 구운 두툼한 녹두 지짐이와 살짝 데쳐 얇게 썰어낸 문어숙회에 꾸득꾸득 말려 얌념장에 찍어 먹는 코다리까지. 몸통에 두부와 갖은 야채를 채워 쪄낸 오징어순대와 함경도 특유의 발효음식 가자미식해가 군침을 돌게 한다. 설이면 함경도에서 볼 수 있던 푸짐한 상차림이다. '설날 이북에서는 어떤 음식을 드시냐'고 묻자 함경도 음식 전문점 반룡산의 정상혁 사장은 함경도 명절상을 근사하게 차려냈다.

5년 전 문을 연 이 집은 남한에 하나뿐인 함경도 음식 전문점이다. 반룡산은 함흥 남서부에 있는 산 이름이다. 함경도 함흥 출신인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을 먹고 자란 정 사장은 요리법을 전수받아 이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한 가자미식해는 지금도 어머니가 직접 담그신다고 한다. 설 상에 떡국이 빠졌다고 묻자 떡국 대신 만둣국을 많이 먹지만 그만큼이나 녹말국수도 많이 먹는다고 정 사장은 말한다.

"녹말국수는 함경도 대표 음식 중 하나죠.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나 생일, 손님상 차릴 때라든가 잔치할 때도 빠뜨리지 않는 게 녹말국수예요. 함경도에서 내려오신 분들은 지금도 면 뽑아주는 가게에서 면만 사다가 집에서 해 드실 정도니까요. 100% 전분으로, 냉면과는 달리 면을 굵게 뽑죠." 양지 부위 등 쇠고기로 맑게 육수를 내고, 숙주나물, 양지, 오이, 지단 등을 양념해 고명으로 얹는다. 국수 맛은 싱겁고 고명 맛은 짭짤해 같이 먹으면 적당히 간이 맞다.

가릿국밥도 함흥 주변 지역에서만 먹는 음식이다. 가리(갈비의 함경도 사투리)로 국물을 내고 갈비를 건져낸 육수에 밥과 선지, 양지, 무, 두부, 지단 등을 얹어서 먹는다. 국물을 먼저 마시고 남은 밥을 고추장과 참기름에 비벼 먹으면 한 그릇으로 두 가지 맛을 볼 수 있다. 만두처럼 평소에도 먹지만 설에도 먹는 음식이란다. 함경도식 만두는 어른 주먹만큼 크다. 추석에 먹는 송편 크기도 이만해 두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한다.

"이북 음식엔 대체로 숙주가 많이 들어가는데, 만두소도 마찬가지예요. 숙주, 두부, 돼지고기와 꿩고기가 주로 들어가죠. 그런데 꿩을 구하기 어려워 요즘은 닭고기와 쇠고기를쓰지요."

동해안 찬 바다에서 잘 잡히는 명태를 꾸득꾸득 말린 코다리는 양념간장에 찍어 설에도 먹는다. 함경도 식탁에 빠지지 않는 명태의 변신은 화려하다. 창자로는 창난젓, 알로는 명란젓, 아가미로는 아가미젓을 담근다. 배를 갈라 겨울철에 말린 황태, 통째로 바짝 말린 북어에 얼린 동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동해안 지방이 다 그렇듯 명태는 함경도 대표 음식 중 하나예요. 내장을 뺀 뱃속에 두부와 숙주 등을 버무린 만두소 같은 것을 넣어 동태 순대를 만들기도 하는데, 설에 먹는 오징어순대와 비슷해요. 꾸득꾸득 말린 코다리는 쪄서 먹지요. 특히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되면 코다리찜만 밥상에 쌓아 놓고 먹을 정도죠. 명태가 뼈가 곧잖아요. 한 해 동안 등 휘지 말고 잘 살라며 한 상 쪄 먹는 거죠."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함경도 향토음식으로는 가자미식해를 최고로 친다. 참가자미를 꾸득꾸득하게 말리고 조밥을 쪄서 버무려 발효시킨 식품으로, 무와 고춧가루를 섞어 겨우내 김치처럼 먹는다.

"가자미식해는 함경도 사람들의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해요. 가자미식해나 냉면 같은 몇 가지 음식을 제외하면 이북 음식은 대체로 담백하고 슴슴해요. 조미료도 거의 쓰지 않아 느끼하지 않구요. 또 만두 보면 아시겠지만 크고 투박하죠. 영호남에서도 문어숙회를 차례상에 올리지만 함경도에선 대문어만 쓰지요."

날씨가 춥고 산이 많은 지역에서 산 사람들을 닮았기 때문일까. 정 사장이 부모님과 단골들을 통해 본 이북 사람들은 대체로 "세심하고 자상하진 않지만 성격이나 행동이 대범하고 통이 크다"고 한다.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보람된 순간이라면 고향 맛을 그리며 찾아오는 이들을 만날 때다. 실향민들이 "고향 음식을 맛보게 해줘서 고맙다"며 손을 덥석 잡기도 하고, 따로 왔다가 함경도 친구를 만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20대에 피난 온 분들이 8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마음이 짠해진다. "단골 손님이 2, 3년쯤 안 보이시면 돌아가신 거더군요. 그러면 부모님을 그리워하면서 가족분들이 찾아오고 그래요."

고향이 그리워도 가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정 사장은 설 연휴에도 가게 문을 연다. 가끔 만들어 손님들에게 들려 보내곤 하는 이북식 인절미를 설에도 무료로 제공한다. 이북식 인절미는 큼직하게 툭툭 잘라서 콩가루를 묻히지 않고 삶은 팥을 찍어 먹는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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