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관악구 삼성산 기슭의 한 판잣집. 마른 체격에 수줍음 많은 초등학교 4학년 권윤호(10)군의 꿈은 소박했다. 밥상이나 방바닥이 아닌 책상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것. 윤호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지만 모든 일을 할머니와 상의하는 속 깊은 아이다.
윤호는 엄마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윤호 엄마는 5살 때 가출했다. 아버지가 있지만 지방을 돌며 노동을 해 집에는 잘 오지 않는다. 윤호의 가족은 사실상 할머니(76)와 동생 영호(9)가 전부다.
동생 영호는 활달한 성격이다. 정에 주린 영호는 몇 번만 얼굴을 익힌 사람이면 금새 팔에 안기고 곧잘 따른다. 영호는 장래 희망을 묻자 "의사가 돼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할머니 다리를 낫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두 아이의 꿈을 키워줄 환경은 척박하기 그지 없다. 할머니가 서울에 오기 전 농사일을 도와 마련한 전세금으로 들어온 무허가 판잣집은 겨울이면 찬바람이 몰아친다. 기름보일러가 있지만 석유를 못 사 쓰지 못하고 동사무소 도움으로 연탄보일러를 쓰지만 집안 곳곳의 균열이 있어 한기만 돈다.
윤호의 할머니는 "아이들이 '할머니 손을 잡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며 양손을 한쪽씩 잡고 자 눈물이 흘러도 닦을 손이 없다"고 털어놨다.
윤호 가정의 월수입은 할머니가 받는 노인연금 6만여 원이 전부다. 전기와 수도세만 한 달에 4만여 원 나온다. 겨울에는 그나마 구에서 유류비 20만원을 지원 받는다.
예전 집에 온 윤호의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떠밀려 동사무소를 찾은 적이 있지만 '한달 수입 150만원'이라고 호기를 부리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 신청 대상도 되지 못했다.
세 식구 점심은 사회복지관에서 무료 배달해 주는 도시락 2개가 전부다. 저녁은 주로 라면으로 때운다. 윤호와 영호는 학교와 복지관 공부방을 가는 것 외에는 주로 할머니와 집안에서 지낸다.
윤호 할머니의 소원은 '아이들이 따뜻하게 씻고 잘 수 있는 집'이다. 지금 사는 무허가 판자촌은 내년 철거될 예정이다. 내고장사랑재단은 윤호군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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