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1년에 한 번, 1월에 목돈으로 자기계발비를 준다. 규정으로 정한 어떤 사항들을 성실하게 지켜냈을 경우에 한에서다. 실은 일이라기보다 거저먹기가 맞다. 그런데도 지난 3년간 나는 한번도 그 돈을 월급에 보태보지 못했다. 무심했기 때문이다. 게을렀기 때문이다.
두둑해질 월급에 신이 난 후배가 "앗싸!"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순간 나도 참,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애꿎은 연필심은 부러뜨리고 난리냔 말이지. 그러나저러나 교정지 속으로 고개를 푹 수그리는데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가 연신 걸려왔다. 퉁명스러운 나와 달리 몹시도 친절한 여성이 대뜸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축하합니다, 고객님." 이러는 거 아닌가.
파주의 겨울 속에 발가락 얼지 말라고 후배들에게 어그부츠 한 켤레씩 사줬는데, 그 매장에서 벌인 이벤트에 글쎄, 내가 1등으로 당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경품은 삿뽀로 왕복 비행기 티켓 두 장. 신이 나서 달력을 훌훌 넘겨보는데 어라, 매달 잡혀 있는 빡빡한 출간 스케줄을 어째.
함께 갈 남자도 없고 함께 갈 여자는 더더욱 없고… 김이 빠져 있는 찰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국 맘씨 좋은 큰 처형 소리 듣고 있는데 딩동, 찍히는 문자메시지. 단골 마사지 숍에서 벌인 이벤트에 내가 3등으로 당첨됐다나. 까짓것 한방소화제와 발마사지 1회 무료 쿠폰이면 족하지 아니할까. 지금 내게 간절히 필요한 자기계발비라면.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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