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면 짧은 설 연휴, 극장가엔 한국영화들이 예상보다 많다. 각기 다른 색깔의 영화 네 편이 흥행전선을 형성한다. 한 주 한 편 또는 두 편이 개봉하는 평소와 비교했을 때 치열할 경쟁이 예상된다. 눈에 쏙 들어오는 대작은 없지만 나름의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 관객을 유혹한다. 법정 영화와 스포츠 영화, 코미디, 멜로 등 상차림이 다채롭다.
비판-'부러진 화살'
'부러진 화살'은 이번 설 연휴뿐 아니라 이달 가장 눈길을 끄는 한국영화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석궁 교수 사건을 소재로 사법부의 권위주의에 비판의 화살을 쏜다.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석궁을 들고 찾아갔다가 상해혐의로 기소된 교수가 법정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는 내용이 스크린을 채운다.
'하얀 전쟁' 이후 20년 만에 만난 정지영 감독과 안성기의 호흡이 일품이다. 특히 주인공 김영호 교수 역할을 맡은 안성기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법대로'를 주장하며 변호사를 제쳐두고 스스로를 변론하고, 판사와 검사를 통박하는 인물 묘사가 흥미진진하다.
이음새는 뭉툭하지만 끝은 뾰족한 영화이다. 피고인이 자신만의 논리로 재판부를 통박하고, 검사에게 조목조목 따지는 여러 장면으로 관객에게 묘한 희열을 전한다. 특별 출연 형식으로 잠깐 얼굴을 비추는 이경영과 문성근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웃음-'댄싱퀸'
어느 날 지하철에서 등 떠밀려 사람을 구하게 되면서 서울 시장 후보가 된 서민 변호사 황정민(황정민)과 댄스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그의 아내 엄정화(엄정화)의 우여곡절을 그렸다. 순애보로 맺어진 두 사람이 뒤늦게 각자 꿈을 향해 달려가다가 서로가 방해가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웃음과 감동을 만들어낸다. 생활 속 유머가 배꼽을 노린다. 코를 골며 자는 털털한 중년의 모습을 연기하는 엄정화, '서울특별시' 발음을 제대로 못해 악전고투를 벌이는 순박한 모습의 황정민이 친근감있게 다가온다.
댄스 가수 출신인 엄정화가 실명으로 등장해 자신의 가수 활동에 오마주를 바치는 형식이 이채롭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황정민의 캐릭터도 눈길을 끈다.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 영화 '써니'의 시위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초반부 등이 거슬린다. '방과 후 옥상'과 '두 얼굴의 여친'의 이석훈 감독. 12세 이상 관람가.
사랑-'네버 엔딩 스토리'
동생 부부에게 얹혀 살면서도 무사태평인 남자(엄태웅)와 안정된 미래에 모든 것을 걸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꼼꼼한 여자(정려원)가 우연히 만난다면. 그리고 둘이 3개월과 6개월로 각각 시한부 인생을 동시에 선고 받는다면. '네버 엔딩 스토리'는 전혀 성격이 다른, 불우한 남녀의 사랑으로 경쾌하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빚어내려 한다. 혼자 죽기 외로웠는데 잘 됐다며 두 남녀가 장례식장을 답사하고, 수의를 입어보면서 데이트를 하며 조금씩 사랑에 빠져드는 다소 발칙한 설정이 독특하다.
유선과 박기웅, 권해효 등 조연 진용이 만만치 않다. 주인공들의 우울한 내면과 영화의 화사한 색조의 대조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의문. 감독 정용주, 15세 이상 관람가.
감동-'페이스 메이커'
'페이스 메이커'는 감동에 방점을 찍는 스포츠 영화다. 언제나 자신을 희생하며 남들을 위해서만 살아온 마라톤 페이스 메이커의 마지막 승부수를 그렸다. 동생의 출세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거나 유망주 후배를 위해 레이스를 다 뛰지 못하는 사내의 고군분투가 감동을 자아낸다.
마라토너로 변신한 김명민의 연기가 관전 포인트다. 루게릭병 환자 연기를 위해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체중 감량을 하는 등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스타일의 연기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주법이나 몸매가 영락없이 마라토너로 보인다. 지나치게 평면적인 인물 묘사, 마라톤 중계를 연상시키는 듯한 느린 전개 등은 흠이다. 런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후반부 마라톤 장면, 런던올림픽 경기장의 위용 등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장대 높이뛰기 국가대표 선수로 나오는 고아라와 김명민의 우정은 이 영화의 양념. 감독 김달중.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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