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해 온 '동반성장 프로그램' 제1장이 끝났다.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가 230개 업종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작업이 지난 17일 완료되고, 주요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분야에 대한 개선계획도 제시됨에 따라, 대ㆍ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위한 1단계 개혁작업은 일단락된 셈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비협조와 정부의 무기력ㆍ무성의가 겹치면서 동반성장 정책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동반위는 2010년 12월 설립 이후 가장 큰 숙제 하나를 끝냈다. 동반위는 17일 회의에서 마지막까지 미해결 업종인 데스크탑PC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신청에 대해 최종적으로'반려'조치를 했고, 이로써 230개 업종에 대한 판단을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마지막 숙제였던 데스크탑PC가 적합업종으로 선정되지 못한 채, 찝찝하게 '반려'로 결론 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날 회의에 대기업 측이 모두 불참해 논의조차 불가능했기 때문.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회의조차 보이코트하는 것 자체가 동반성장정책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사실 시작은 화려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핵심 국정과제로 '동반성장' 화두를 제시하고, 이를 추진할 기구로 동반성장위원회를 설립하면서 거물급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까지는 좋았다. 정부의 힘이 실렸던 터라, 대기업들도 따라왔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동반위의 위상은 곤두박질쳤다. 정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오면서. 이에 반대하는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과 설전이 이어졌다. 동반성장과 관련된 두 기구의 수장이 싸우는 데도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수수방관했다. 동반위는 대통령 직속기구를 기대했지만 민간기구로 매듭지어졌고, 차관급 이상의 중량감 있는 인사의 배치를 기대했으나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이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됐다"며 "대통령이 의지를 보이면 정부 부처도 적극 나섰을 것"이라고 서운함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부가 방관하는데, 법적 강제력도 없는 동반위에 힘이 실릴 리 없었다. 그 사실을 간파한 대기업들은 작게는 비협조, 크게는 반기를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230개 품목 중 3차에 걸쳐 80여 업종을 적합업종으로 지정했지만,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확인조차 힘든 상태다. 유광수 중기중앙회 동반성장실장은 "적합업종 선정 후에 동반위에서 모니터링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솔직이 잘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내 대기업 측이 작년 말부터 동반위를 보이코트하기 시작했다. 내키지 않아도 여태껏 회의엔 참석했지만, 초과이익공유제 안건을 다루기 시작한 지난 달부터는 두 번 연속 회의에 불참했다. 동반위 내에서조차 "이제 있으나마나 한 기구가 됐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들은 오히려 동반위 보다는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힘있는 정부부처를 상대하거나, 직접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지난 16일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이 공정거래위원장과 간담회를 열고 시스템통합(SI) 광고 건설 물류 등 4대 분야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배제하고 중소기업에 사업참여를 개방키로 한 것이 그 예다.
현재로선 동반위의 앞날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동반위는 ▦내달 2일 이익공유제를 표결에 부치고 ▦3월엔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며 ▦향후 서비스 업종에도 적합업종 선정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힘이 빠진 상태에서 제대로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더불어 현 정부가 레임덕로 치닫는 상황이라, 동반성장정책 자체도 지금 상태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긴 힘들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