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딸에게도 말 안 하고 큰 동생하고만 상의해서 한 일인데, 어떻게 알고 전화까지 한 거야?"
군밤장사와 야채행상, 파출부 일을 해가며 평생 모은 1억800만원을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우간다의 아이들 지원에 써달라며 17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에 기부한 진순자(73) 할머니의 일성은 이랬다.
살고 있는 경남 양산시 집 인근 농지를 팔아 기부를 했다는 할머니는 1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별 일도 아닌 걸 갖고 호들갑 떨고 싶지 않다"며 오히려 부끄러워했다.
할머니가 우간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0년 10월 우연히 어린이재단이 진행한 우간다 어린이 돕기 모금방송을 보고부터다."내가 6ㆍ25전쟁을 겪었는데 그때 우리도 해외원조 받은 돈으로 공부하고, 학용품도 사고 그랬어. 그래선지 극빈국 아이들 우는 모습이 눈에 계속 밟히는 거야. 그래서 곧바로 후원을 시작했지."
그는 지금까지 어린이재단에 매달 2만원씩 우간다 어린이 돕기 정기후원을 하고 있다.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남동생 4명과 함께 고생하며 보낸 어린 시절 경험도 힘든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할머니는 40여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몫까지 일하며 딸을 뒷바라지한 탓에 두 손가락은 제대로 펴지지 않고 굳은살 배인 손은 감각조차 무뎌져 있다. 어렵게 번 만큼 더 애착이 컸을 법도 한데 정작 그는 "기부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좋은 일 하나는 하고 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맨날 형편이 힘들어 미루다 이제야 하게 됐어. 딸도 지금은 어엿한 선생님이고. 이 정도면 행복하지. 뭐가 더 필요하겠어?"
기부금은 우간다 마신디 지역에 거주하는 아동 30명에게 앞으로 10년간 매달 3만원씩 전달될 예정이다. 제3세계 아이들에게 꾸준한 지원을 이어가고 싶다는 할머니 뜻에 따른 것이다.
다른 바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살아 생전 직접 (우간다에)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며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