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마이너스 인생입니다. 체불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정부 부처조차 없습니다."
충북 청주시의 한 택지개발지구에서 2010년 8월부터 포크레인으로 터파기 공사를 하고있는 오오진(42)씨. 그는 4,500만원에 달하는 넉 달치 노임과 기계대여료를 받지 못해 지난해 상반기 적금통장을 깨고 신용카드를 돌려막아 연명했다.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사업이라 체불은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하청회사 사장이 부도를 내고 잠적하자 이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됐다. 버티다 못해 찾아간 원청회사 관계자들은 "이미 하청회사에 공사비를 다 줬으니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모른 척했다. 결국 오씨는 동료 30여명과 두 달이나 천막농성을 한 끝에 원청업체로부터 떼인 임금 일부를 받았다.
오씨는 "정부는 발주처에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했지만 현장에 있던 LH 직원 중 누구도 우리가 돈을 제때 받았는지 묻지 않았다"며 "공기(工期)를 맞추라고 일을 독촉할 때처럼 체불에도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씨와 같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상습 체불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포크레인, 덤프트럭 등을 소유하고 하청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간주돼 체불업주를 형사처벌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받을 길은 민사소송뿐이다.
18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건설기계를 소유한 2만여명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체불액수를 조사한 결과 399억3,200만원에 달했다. 전국의 건설기계가 38만대이므로 노조는 지난해 건설기계 노동자의 총 체불액수가 8,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체불이 발생한 326곳 중 25곳이 LH가 발주한 공사현장이었고, 체불액수가 가장 많은 발주처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57억4,000만원)이었다. 공기업들이 오히려 체불감독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체불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단속 권한이 없다"고 발뺌하고 건설장비관리 부처인 국토해양부는 "근로기준법을 준용해 (고용부가) 단속하면 된다"고 미루고 있다. 지난해 강기갑 의원이 하청업자에 의해 체불이 발생할 경우 발주자나 원청이 이를 지급하도록 하고, 임금ㆍ기계대여료를 한달에 1회 이상 현금으로 주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건설업계의 반대로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이정훈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몇 달씩 임금을 못받아도 일감이 끊길까봐 독촉하지도 못한다"며 "하청회사와 계약을 맺을 때 발주처의 지급보증을 강제하는 등 규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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