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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희태 의장, 버틸수록 나락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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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희태 의장, 버틸수록 나락은 깊다

입력
2012.01.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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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국회의장의 처신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18일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 의장은 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4년 전 일이어서 기억이 희미한데다 당시 중요한 5개 선거를 몇 달 간격으로 치렀기 때문에 할 말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의 폭로에다 박 의장 비서들의 관여가 드러나는데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국회의장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후안무치, 염치가 없고 두터운 얼굴의 전형처럼 보인다.

박 의장은 "국민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4월 총선 불출마 입장을 밝혔지만, 그 정도로 이 사건이 덮어질 수 없다는 점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버티는 것은 정치자금에 관한 한 정치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중요한 5개 선거를 치렀는데 할 말이 별로 없다"는 대목은 이를 다 밝히면 정치권이 쑥대밭이 될 텐데 그래도 나를 몰아세울 것이냐는 반발이자 협박이나 다름없다.

실제 당시 전당대회 전후 사정을 보면 박 의장은 '얼굴마담'성격이 짙었다. 정몽준 의원에 대표 자리를 넘기지 않으려는 친이계가 선거전을 주도하고 돈봉투 살포도 도맡았을 가능성이 있다. 박 의장이 자금 조성과 배포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내가 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느냐"는 반감이 들 것이다. 그의 버티기는 다분히 친이계 핵심과 청와대를 향한 우회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메시지다.

그러나 그런 처신은 정치 초년생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5선에 국회의장인 정치원로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돈봉투 사건은 작게는 한나라당 쇄신의 출발점이고 크게는 정치개혁의 분수령이다.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어물쩍 넘어갈 경우 한나라당은 회생 불능이 되고 검찰도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박 의장 자신은 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명예도 의리도 품격도 저버린 정객으로 깊이 추락할 것이다. 어려울수록 의연한 처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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