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출범했다. 한명숙 후보가 24.5%의 지지를 얻어 2위인 문성근 최고위원(16.7%)을 여유 있게 제치고 새 대표로 선출됐다.
1ㆍ15 민주당 전당대회는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모바일 투표가 도입되었고, 시민선거인단 규모가 57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정당 사상 유례없는 시민참여 경선이 치러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이번 민주당 당 대표 경선 결과,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성이 발견된다. 우선, 친노의 부활과 호남 세력의 퇴조로 특징지워진다. 그 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친노 세력이 당권을 접수했고, 당의 주류였던 호남 세력은 몰락했다. 새로 선출된 6명의 최고위원 중 호남출신은 단 한 명에 불과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한국 정당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조직으로써의 정당이 아니라 유권자 속의 정당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지자가 중심이 된 모바일 투표율이 84.4%에 이른 반면, 당원 중심의 지역현장 투표율이 20.8%로 나타난 것이 이런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셋째, 여성이 정치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1위 한명숙 후보와 3위 박영선 후보의 지지율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여성이 당의 화학적 결합과 조화를 이루는 데 적임이라는 평가가 크게 반영된 것 같다.
넷째, 지도부의 진보 성향은 강화되었고 세대교체의 흐름이 만들어 졌다. 민주당 새 지도부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검찰 개혁 등을 강조하면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출자총액제도 부활,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증세, 무상 급식ㆍ반값 등록금, 중소기업 고유업종 법제화, 검사장 직선제 도입 등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도 더 급진적인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명숙 대표에게 주어진 최대 임무는 4월 총선에서 승리하고 이를 동력으로 12월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급한 일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통합·연대를 순탄하게 풀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 대표의 말대로 "정권교체로 국민이 이기는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무엇보다 '복수의 정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성근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이 당한 온갖 수모를 깨끗이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문제는 이렇게 '되갚아 주겠다'는 식의 한풀이 보복으로 접근하면 정치 자체가 실종된다. 극심한 국론분열과 정치 불안정을 가져와 갈등과 대립의 정치가 판을 치고 정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 민주당 새 지도부는 '노무현 프레임'에만 집착해서도 안 된다. 지난 2007년 직후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안희정(현 충남지사) 은 "친노라고 표현된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다. 당시 10년 만에 정권이 진보에서 보수 세력으로 교체된 것은 오만하고 무능한 노무현 진보 정부에 대한 저항과 응징의 결과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였다. 그렇다면 아무리 민주당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어도 친노 세력은 과거 실패에 대한 진솔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열린우리당 때처럼 우리 스스로의 실력에 의한 것보다 상대편의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을 원하면 안 될 것이다"고 일침을 가한 김부겸 최고위원의 고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분명 민주당은 '특권과 차별이 없는 세상',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려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와 같은 투쟁일변도의 정치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수권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리얼미터가 지난 3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가장 많은 32.2%가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응답했다. '정체성 모호'(20.1%)와 '투쟁에만 치중'(16.3%)이 그 뒤를 이었다. 민주당 한명숙호가 깊이 유념해야 할 민심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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