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김모 교사는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업이 없다. 학급 학생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두 차례 조회, 종례 시간뿐이다. 이전까지 도덕은 3년에 걸쳐 가르쳤지만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집중이수제가 실시되면서 1학년에 몰아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2학년 담임인 김 교사는 "정작 담임 맡은 학생들의 수업을 하지 못하니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며 답답해 했다.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정작 학교현장은 인성교육을 할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성취도평가 등 학력 경쟁은 가뜩이나 심해졌고, 지난해부터 적용되고 있는 교육과정은 말로만 창의ㆍ인성교육을 강조할 뿐 국영수 중심의 입시 교육만 강화됐다고 교사들은 비판하고 있다.
국영수 강화하는 교육과정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된 인성교육은 도덕 관련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정도다. 물론 도덕 시간에 주입식 인성 교육을 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지만, 그마저도 줄고 있다.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 재량대로 수업시수의 20%까지 증감할 수 있도록 했더니 대부분의 학교들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입시과목의 시수를 늘렸다. 줄어든 과목은 입시에서 빠지는 도덕 등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4월 전국 초중학교의 교육과정 편성현황을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국어와 수학 수업을 늘린 학교는 각각 57.5%, 62.5%였고 줄인 학교는 각각 7.9%, 4.4%에 불과했다. 반면 인성교육, 생활지도와 연관 있는 바른생활 시간을 줄인 학교는 29.0%, 슬기로운 생활을 줄인 학교는 30.8%였다. 이들 과목을 늘린 학교는 각각 15.5%, 16.9%에 불과했다.
중학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국 3,221개 중학교 가운데 영어 수업을 기준시수(3년간 340시간)보다 늘린 학교는 73.7%(2,375개), 수학(기준시수 374시간)을 늘린 학교는 54.5%(1,765개)나 됐다. 반면 도덕 수업은 33.0%(1,064개)가 줄였고, 늘린 학교는 1.3%(42개)에 불과했다.
교과부는 인성교육을 강화한다며 창의적 체험활동을 초중학교는 주당 3시간, 고교는 주당 4시간 실시하도록 했지만 올해부터 주5일 수업제가 실시돼 타격을 받았다. 신성호 고대부고 교사는 "주5일 수업으로 평일 수업부담이 커지자 많은 학교들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줄이고 있다. 결국 부족한 창의적 체험활동은 입학식, 졸업식, 소풍, 체육대회 등 교육당국이 인정하는 학교 행사로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성교육도 정규과정 포함해야
인성교육을 교과 교육처럼 주입식으로 가르치기는 어렵다. 그래도 교육계 일각에서는 생활, 인성교육을 공식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종철 전국교직원노조 학생생활국장은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담임교사의 상담이 중요한데 하루 1시간 정도를 상담과 생활지도에 할애하도록 하려면 생활지도와 인성교육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수업시수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실에서부터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학급 자치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의견도 나온다. 신은희 충북 비봉초 교사는 "학급 회의가 활성화돼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들으며 서로의 존재감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어떻게 관계를 맺고, 풀어가야 하는지 알지 못해 이를 배우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7일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 간담회를 가진 생활지도교사들도 담임교사의 수업시수 감축 등 인성교육의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인천 진산중 방명환 교사는 "사단장이 아무리 지시하더라도 고지에 깃발을 꽂는 것은 병사"라며 "수업시수를 줄여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방 교사는 "결손가정,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학생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생활지도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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