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란 핵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이란 핵문제가 대외정책의 핵심 이슈로 부상할 게 분명한데, 이에 어떤 입장을 취하더라도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수렁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마당에 이란에 다시 군사적 제재를 가할 경우 반전여론에 휩싸일 게 뻔하고, 그렇다고 미적거리면 이란의 핵보유를 방치한 유약한 지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특히 군사행동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어떤 파장을 낳을 지도 예상하기 힘들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오바마 재선은 곧 이란의 핵무기 보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군사 행동에 미온적인 오바마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이란 제재를 담당한 스튜어트 아이젠스탯 전 국무차관은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해에 대외정책을 다루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며 “어떤 제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선택지가 매우 적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제재는 돈줄죄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달 31일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국방수권법에 따라 이란 중앙은행과의 금융거래를 금지하고 정부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석유수출을 차단해 백기투항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일부 효과는 있었다. 이란 석유의 주요 수입국인 한국 일본 등은 대체 물량을 찾기 시작했고, 제재 발효 이후 이란 리알화 가치는 급락했다. 에너지 시장의 안정을 위해 필요할 경우 제재를 면제하는 안전판도 마련해 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석유시장의 특성상 제재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란 정부가 석유 금수조치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언급한 직후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 대표적 예다. 석유 전문가인 다니엘 유진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은 오직 석유 뿐”이라며 “수급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거대 산유국의 수출을 제한한 것은 석유시장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미세한 유가 변동에도 휘청거릴 정도로 허약하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백악관이 먼저 나서 의회에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행정부가 마지못해 군사행동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나 고위 관리들은 이란의 핵개발을 막을 확실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경제제재의 효력을 대선 국면까지 끌고 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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