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꼭대기에 마련했던 아파트는 복도식이었다. 산을 향했으니 여름이면 모기떼에 겨울이면 눈바람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나, 나란히 붙은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생활 속의 이야기는 익숙한 듯 낯선 일상으로 내게 접수되곤 했다.
갈치 굽는 냄새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이 있는가 하면 바람 피운 남편을 어쩌지 못해 제 아이를 때리는 한 여자의 악다구니로 쩌렁쩌렁한 집에, 나처럼 늦은 밤 회심곡을 틀어놓고 세탁기를 돌리는 집도 있었으니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얼마나 많은 가정사를 만나볼 수 있으려나.
폭염이 기승이던 어느 여름 밤, 느닷없이 "딩동" 벨이 울렸다. 옆집 부부라 했다. "혹시 이상한 냄새 못 맡으셨어요? 바람을 타고 퀴퀴하니 살 썩는 냄새가 나서요." 창은 죄다 닫혀 있고 에어컨만 신나게 돌아가던 거실 안으로 남자의 시선이 예리하게 와 꽂히는 게 느껴졌다. 저 의심의 눈초리는 뭐지?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베란다를 열자 항아리 위에 신문지로 둘둘 싸여 있던 그것은… 어머 이게 언제적 족발이라니.
우리들은 종종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그날 이후 감쪽같이 사라진 냄새의 향방에 대해 그들은 더는 묻지 않았고, 부끄러움에 나는 그저 가벼운 목례로 발뺌할 수밖에 없었다. 주말이면 하루 종일 트럼펫을 불어대는 앞집 아저씨, 층간 소음으로 아랫집과 자주 싸운다지만 살다 보면 내가 트럼펫 불 일도 있지 않겠어요?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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