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7일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대북ㆍ대이란 제재 조정관을 통해 이란산 원유수입 감축을 공식 요청해 옴에 따라 우리 정부도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묘수 찾기에 나섰다.
정부의 기본 방침은 ‘미국의 요구에 응하되, 그 수준은 최소화한다’는 것. 정부 고위관계자는 “외교관계 등을 고려하면 어차피 미국의 요구를 완전히 뿌리치기는 어렵다”며 “다만, 전체 수입량의 10분의 1이나 되는 이란산 원유 감소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현실적 절충점을 찾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외교통상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 3개 관련부처가 아인혼 조정관과 회의를 가졌는데, 첫 만남이어서 구체적인 원유수입 감축량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미국 국방수권법의 적용 예외 기준인 ‘상당한(significant) 규모의 수입량 감축’에서 ‘상당한’의 기준이 우방국 사정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 한국의 특수성을 최대한 설득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원유 감축량이 어느 수준으로 정해지든, 유럽 위기로 가뜩이나 불안한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란 사태의 여파로 향후 국제유가나 국내 원유 도입가가 상승할 경우 ‘글로벌 불황의 여파를 최소화하자’는 경제운용 목표가 내부에서부터 먼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올해 연평균 유가(두바이유 기준)를 배럴당 100달러로 예상하고 경제성장률(3.7%)과 물가상승률(3.2%) 목표를 잡았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물가를 3% 초반대에서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00% 수입에 의존하는 유가가 예상 밖으로 뛸 경우, 추가적인 성장률 하락과 물가 상승은 피하기 어렵다.
한국은행과 이근영 성균관대 교수 등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1% 상승할 때 국내 성장률과 물가는 향후 1년6개월~2년여에 걸쳐 각각 0.04%와 0.1%씩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국제유가가 100달러에서 10%만 올라도 성장률은 0.4%포인트 떨어지고 물가는 1%포인트 급등한다는 얘기다. 실제 두바이유는 작년 10월 초에 비해 13일 현재 13% 이상 급등한 상태다.
국제기구 역시 이 같은 한국경제의 취약점에 주목하고 있다. 6월로 예정된 연례협의에 앞서 16일 기획재정부를 비공식 방문한 국제통화기금(IMF) 대표단은 이란발 유가급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전략을 집중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작년 말 정부가 올해 평균 유가 100달러를 산정할 당시, ‘미국의 제재 압력’ 변수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IMF의 한국경제 전망이 좀 더 부정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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