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신문 기사들 중 관심 있는 기사의 제목을 붙이고 그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연필로 표현하시오."(동양화과)
16일 오전 10시 서울대 미대와 문화관에서 치러진 2012학년도 서울대 미대 신입생 정시모집 실기고사에서 한국일보가 시험 문제로 출제됐다. 약 400명의 동양화과, 디자인 학부 수험생들에게 이날 나온 한국일보를 한 부씩 나눠주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다양한 시각요소를 사용해 표현하라'(디자인 전공)는 문제가 나온 것이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수험생들은 "서울대 미대 입시가 파격적이라고 소문나긴 했지만 신문 자체가 시험 문제로 나올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양화과 수험생 백정혜(20ㆍ여)씨는 "정치면 등 앞쪽 지면에는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사가 없어 막막했는데 뒤로 갈수록 다양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며 "고민하다가 얼마 전 선생님과 토론했던 학교 폭력 관련 기사를 골랐다"고 전했다.
수험생들은 신문의 편집 디자인 요소, 철학과 가치도 읽어냈다. 디자인학부 수험생 최영표(21)씨는 "한국일보 서체가 균형감 있다고 느껴져 이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같은 과 수험생 김나영(20ㆍ여)씨는 "신문이 현실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시험 문제로 출제된 것 같다. 사람들을 끌어 당겨야 하는 디자이너 지망생으로서 삶을 반영하는 신문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출제는 미대 학장 부학장 교수 7~8명이 4박 5일간 합숙하며 극비리에 시험 문제를 논의한 결과다. 이순종 서울대 미대 학장은 "수험생들이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기초 소양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이런 문제를 냈다"며 "사회와 소통하는 예술가를 길러내겠다는 서울대 미대의 교육 방향성을 제시하는 취지도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대 미대는 지난해에는 인터넷에서 강과 길이 있는 지역의 지도를 출력해 나눠주고 "입체물로 표현하라"는 문제를 냈다.
많은 신문 중에서도 한국일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 학장은 "특정 정치적 입장에 치우치지 않는 신문이고 문화 예술을 깊이 있게 다루기 때문에 미대 시험 문제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디자이너의 눈으로 봤을 때 중성적이고 거슬림 없는 한국일보 디자인도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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