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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흉물' 된 한옥/ 서울경찰청이 사들여 7년간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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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흉물' 된 한옥/ 서울경찰청이 사들여 7년간 방치

입력
2012.01.1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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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지가 10년 가까이 됐어요. 동네 흉물이죠, 흉물."

서울 종로구 옥인동 주민 김선화(54)씨는 "아무도 청소를 안 해 몇 년째 저 집 마당 나무에서 골목길로 떨어진 낙엽을 내가 다 쓸고 있다"며 맞은 편 한옥을 가리켰다. 5년 전까지 옆집에 살았다는 주민 한철구(43)씨는 "넓은 한옥이 비어 있으니 무척 으스스했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경복궁 서쪽 동네인 '서촌'에 자리한 옥인동 19-16번지. 이곳의 약 467㎡(140평) 넓이 빈 한옥은 동네에서 '흉물'로 통한다. 2m가 넘는 담 위에는 철조망이 둘러져 있고, 기우뚱하게 부서진 철대문 틈으로 엿보이는 마당에는 낙엽이 가득했다. 잡초가 무성한 지붕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고, 방문들도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이 폐가의 소유주는 정부. 2004년 12월부터 서울경찰청 소유였다가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로 바뀌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애초 202경비대 숙소 혹은 직원 어린이집 용도로 약 9억5,000만원에 매입했지만 15억원 정도의 추가 건축 예산이 확보 안 돼 활용을 못했다"며 "결국 용도폐기하고 국유재산법에 따라 기재부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업 계획이 표류하는 동안 집이 전혀 관리되지 않았다는 점. 2008년 말부터 이 한옥 보존을 주장해온 남재경 서울시의원은 16일 "보존이 잘 된 한옥이 많은 북촌 한옥마을에서도 이렇게 넓고 좋은 한옥은 찾기 어렵다"며 "집이 망가질 때까지 방치한 무책임한 공공기관의 행태를 보라"고 말했다. 서울시 한옥문화과 관계자는 "지난해 초 '관리라도 우리가 하겠다'고 서울경찰청에 요청했지만 경찰 측은 보안 문제를 들어 거부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3월 말까지 용도가 확정되지 않으면 이 집을 민간에 매각할 예정이다. 그러나 동네 주민과 시민단체는 "그럴 경우 한옥으로 보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서촌 일대는 한옥밀집지역이 아니어서 한옥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데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김한울 서촌주거공간연구회 감사는 "이 일대가 빠르게 상업화되는 추세를 볼 때 한옥을 허물고 또 카페와 원룸 등이 들어서지 않겠냐"며 "일단 국유재산이 된 만큼 한옥으로 보존하고 공공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공기관 어디에도 마땅한 대책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한옥 매입 예산은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인 25억원에 불과해 일반인 소유도 아닌 이 집을 매입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 집을 경로당으로 쓸 계획을 세웠던 종로구청도 "예산이 없다"며 손을 뗐다. 경찰과 기재부도 손을 놓고 있긴 마찬가지.

남 의원과 서촌주거공간연구회는 "한옥문화 진흥은 한옥마을이라는 관광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서의 한옥의 기능을 살리는 게 원칙"이라며 "관련 기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 집을 동네 주민에게 개방하면서 보존하는 대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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