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이 부진에 빠졌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전혀 뒤질 게 없음에도 연패에 허덕이고 있다. 심기일전이 필요한 상황. 추가적인 전력 보강이 힘들다면 정신력 강화로 조직력을 추스르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정신력 재무장으로 가장 좋은 레퍼터리가 바로 '삭발'이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지만 스포츠무대에서는 '삭발의 심리학'이 통용되고 있다. 그 실체를 들여다봤다.
간판 얼굴이 해야 연쇄 효과
삭발의 미학에서는 나름 법칙이 존재한다. 경기에 나서지 않는 후보나 지명도가 낮은 선수가 하면 별 효과가 없다. 하지만 팀의 간판 스타나 코칭스태프가 한다면 연쇄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각 팀의 에이스, 주장, 감독, 코치가 삭발을 해야만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프로배구 V리그에서 삭발의 연쇄 효과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V리그 최고의 세터로 꼽히는 최태웅(현대캐피탈)이 지난달 14일 라이벌 삼성화재에 2-3으로 역전패하자 삭발을 감행했다. 최고참 최태웅이 머리를 짧게 자르자 문성민과 한상길도 동참했다. 삭발 삼형제의 결연한 의지는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현대캐피탈은 최태웅의 '행동' 후 5연승을 달렸고, 리그 3위로 뛰어오르며 삭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부진에 빠졌던 삼성화재가 단체 삭발로 반전의 계기를 만든 바 있다. 전통의 배구명가 삼성화재는 꼴찌까지 처졌지만 가빈 슈미트와 박철우 등이 모두 머리를 밀며 분위기 쇄신을 시도했다. 이를 계기로 연승 행진을 벌인 삼성화재는 결국 2010~11 시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리그 4연패를 달성했다. 최태웅은 "머리를 자른다고 실력이 갑자기 좋아지진 않는다. 그래도 짧은 머리를 볼 때마다 각오를 다지고 후배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삭발 효과를 설명했다.
개인, 단체, 종목 불문 삭발 결의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계에서는 삭발을 통해 결의를 다지는 경우가 많다. 배구뿐 아니라 농구, 축구, 야구 등 단체 종목을 비롯해 레슬링과 유도, 탁구 등 개인 종목에서도 삭발 투혼을 흔히 볼 수 있다. 스포츠 전문가들은 "특히 단체 종목의 경우 삭발이 불씨가 돼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프로농구에서도 삭발 충격요법의 성공 사례가 있었다. 전자랜드의 유도훈 감독은 지난해 1월 팀이 3연패에 빠지자 머리를 박박 밀었다. 사령탑부터 삭발로 각오를 다지자 선수들도 '으샤으샤' 힘을 냈다. 전자랜드는 이후 4연승을 달렸고 2위로 리그를 마쳤다. 프로축구 FC서울도 삭발의 효과로 휘파람을 불었다. 주장 박용호는 FC서울이 2011년 초반 7경기에서 1승3무3패로 최악의 페이스를 보이자 삭발로 의지를 불태웠다. 이로 인해 FC서울은 지난해 4월 30일 제주전에서 무승부를 끊었고, 최용수 감독대행(현 감독) 역시 선수들을 독려해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프로야구에서는 2008년 김경문 두산 감독(현 NC 다이노스 감독)이 시즌 초반 팀이 7위까지 추락하자 머리를 짧게 자른 전례가 있다. 두산은 사령탑의 결연한 의지로 다시 힘을 내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다. 투수 박찬호(한화)도 메이저리그 시절에 위기 때마다 삭발을 해 효과를 보기도 했다.
런던올림픽이 다가오자 삭발로 마음가짐을 다지고 있는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이 많다. 레슬링과 유도 등의 투기 종목 선수들이 대표적. 이들은 올림픽 메달을 위해 하루 하루 자신의 짧은 머리를 보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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