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가능성 10퍼센트 미만 강력사건을 다룬 케이블 채널 OCN의 'TEN'은 한국 수사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쓴 수작이다. 9개의 에피소드를 끝내고 13일 종영한 이 드라마는 이미 'CSI' '크리미널마인드' '로 앤 오더'같은 미국 수사물로 한층 눈이 높아진 시청층을 흡입하며 수준 있는 범죄 스릴러의 가능성을 내보였다. '별순검 시리즈'의 이승영 PD와 남상욱, 이재곤 작가가 의기투합한 이 드라마는 방영 내내 동시간대 케이블 시청률 1위를 기록, 다음 시즌으로 이어질 전망도 밝다. 여기에는 튀지 않으면서도 안정된 연기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냉철한 형사반장 여지훈 역할의 주상욱(34)이 큰 몫을 했다.
'실장님 전문 배우'로 불리던 주상욱은 괴물 잡는 괴물 형사를 제대로 소화하며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이끌어 냈다. 11일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난 주상욱은 "처음에 '케이블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써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욕심만큼은 아니지만 평이 좋아서 개인적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배우라면 누구나 작품에서 매력을 발산하고자 하는 욕심이 클 터. 그러나 범죄 해결에 초점을 맞춘 수사드라마의 특성상 배우가 튀면 극 몰입에 방해가 된다. 'TEN'의 주상욱은 이 지점을 적절히 조율해 드라마도 살리고 자신도 돋보이게 한 영리한 배우였다.
"단역 할 때부터 늘 생각했던 게 '주인공이 살아야 드라마가 산다'는 거예요. 주인공이 제일 많이 나오는데 매력이 없으면 누가 보겠어요. 근데 우리 드라마는 범인이 주인공이죠. 하하. 그렇다고 멋있게 보이고 싶은 배우로서의 욕심을 아예 안 부린 건 아니죠."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 '아저씨'의 원빈을 보면서 '내가 하면 어떨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TEN' 대본을 보자마자 탐냈다. 실제 1화 '테이프 살인사건'은 영화 시나리오로 기획될 만큼 탄탄한 이야기로 방송 전부터 화제였다. 워낙에 수사물을 즐겨본다는 그는 전작 '자이언트' 등에서 실장님 역할에 한정됐던 이미지를 틀어 세련되고 이지적인 반장님을 만들어 냈다.
"실장님 역할을 참 골고루 많이도 했죠(웃음). 많은 배우들이 하는데 왜 유독 나만 '실장님 전문' 꼬리표가 붙을까 그랬는데, 그만큼 눈에 띄었단 거겠죠? 싫지는 않아요."
모성애를 자극하는 여느 실장님들하고 달리, 주상욱은 반듯하면서도 기대고 싶은 강인한 이미지 덕에 특히 30대 이상 주부팬이 많다. "제 팬들은 일단 30대는 기본 넘어가요. 물론 여고생 팬들도 있지만. 비율로 봤을 때 저랑 비슷하거나 좀 더 많거나. 현실감 있고 편한 캐릭터라서 그런 거 같아요."
'TEN'은 범인을 빼면 주상욱과 김상호, 조안, 최우식 네 명의 형사가 주요인물. 다른 작품보다 출연자가 적어 동료애도 끈끈했다. "시즌2가 제작되면 꼭 출연하고 싶다"는 그는 특히 김상호에게 많이 배웠다고 했다. "상호형은 딱 강원도 정선에서 온 형사 같잖아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도 만들어요. 기가 막힌 거죠 진짜."
하지만 당장은 또 한번 변신을 위해 애쓰고 있다. 내달 4일 첫 방송하는 MBC 주말연속극 '신들의 만찬'에서 그동안의 냉철하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깨는 캐릭터를 보여줄 작정이다. "공무원인데 너무나 해보고 싶었던 허당 캐릭터에요. 하하. 예능에서 보여줬던 제 성격과도 비슷하고. 시트콤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 정극에서 이런 역할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입만 열면 깨는 역할로, 핵심은 빈틈입니다. 일단은 'TEN'의 여지훈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2002년 10월, 스물다섯에 '올인'의 이병헌 아역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미끄러지고 군대로 직행해 절치부심했다는 그는 유달리 작품 욕심이 많다. 지금껏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아직은 더 달릴 때"라고 말한다. "마구잡이로 작품을 택하는 건 아니에요. 하고 싶은 작품이 들어오니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대중에게 연기로 더 인정받을 때까지 더 달려야죠."
채지은기자 cje@hk.co.kr
신정엽 인턴기자(한양대 정치외교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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