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17일 새벽, CNN 앵커가 긴급 보도를 시작했다.
"지금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바그다드 상공에 엄청난 섬광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이라크에 의해 불법 점령된 쿠웨이트 해방을 명분으로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미국, 영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33개국의 다국적군은 F15E를 비롯한 1,000여 대의 전폭기와 크루즈 미사일을 동원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와 주요 군사시설에 대해 대대적인 공습을 단행했다.
작전명 '사막의 폭풍' 걸프전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에 뛰어든 이유는 본질적으로 세계 경제의 원동력인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의 씨앗은 영국의 제국주의 통치에서 비롯됐다. 쿠웨이트는 원래 이라크 남부 '바스라' 주에 속한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았으나 20세기 초 엄청난 양의 원유가 이 지역에 매장된 것을 간파한 영국이 자의적으로 국경선을 그어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분할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쿠웨이트는 대표적인 친미국가가 됐고 이라크는 아랍 민족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시작됐다. 원유를 팔아 경제 재건을 추구하던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원유 증산정책이 계속돼 유가가 하락하자 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해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편입시켜 버렸다.
침공 직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은 쿠웨이트 합병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유엔결의안과 제재를 통해 강도 높은 이라크 압박에 나섰다.
'사담 후세인'이 간과했던 것은 미국이 석유 문제에 관한 한 사활을 걸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쿠웨이트에 이어 또 다른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미국은 '사막의 방패' 작전을 발동해 중동 지역 및 걸프 해역에 20만명이 넘는 전력을 증강 배치했다.
몇 차례 전쟁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1월 17일, 칠흑 같은 새벽 시간을 틈타 공습이 시작됐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다국적군 앞에 이라크 군대는 너무도 무력했다. 전면적인 지상 작전과 함께 아파치 헬기, 스텔스 폭격기까지 투입되자 이라크는 결국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며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전쟁 이후에도 정권을 유지하던 후세인은 2003년 미국과의 이라크 전쟁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다가 3년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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