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이 우리 아이들의 목숨인가요, 아니면 돈인가요." "장래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싶습니다."
14일 일본 요코하마(橫浜)시에서 열린 '탈원전 세계회의' 행사장. 5,000여명의 참석자들은 초등학생 도미쓰카 유지(富塚悠吏ㆍ10)가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기성세대에 보내는 호소문에 눈시울을 붉혔다.
도미쓰카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인근 고리야마(群山) 출신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3ㆍ11도호쿠 대지진에 이어 이튿날 후쿠시마 제1원전 수소폭발이 일어나면서 도미쓰카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했다.
고향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아버지를 홀로 두고 4월 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요코하마로 피난온 도미쓰카는 인터넷 등을 통해 일본 정부가 원전사고를 은폐하고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등급으로 자리매김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고향 친구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난해 10월 '후쿠시마 어린이 지원 간토(關東)'라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3월 11일 당시 후쿠시마에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블로그에서 그는 "(비록) 초등학생이지만, 후쿠시마를 떠난 친구와 남아있는 친구들의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며 블로그 개설 취지를 밝혔다.
블로그를 통해 헤어진 친구들의 근황을 교환하고 원전을 생각하는 어린이들의 생각을 전한 것이 기성세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도미쓰카는 이날 전세계 원전 전문가들이 자리한 회의에 강연자로 초대받았다.
도미쓰카는 이날 "방사성 물질 기준치를 초과하면 얼마나 무서운 거죠? 사고가 발생했는데 왜 아직 원전을 수출하려고 하나요?" 등 원전 사고 피해자이자 어린이로서 가지고 있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왠지 무섭다는 생각만으로는 탈원전 운동은 유행처럼 끝나고 말 것"이라며 "방사성 물질의 영향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쉽게 어린이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운동 전개를 요구했다.
국제 비정부기구(NGO) 피스보트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전세계 30여개국에서 온 원전 관련 전문가, 과학자, 시민단체 간부 100여명이 참석해 원전 없는 세상 구현을 위한 의견과 정보를 공유했다.
특히 후쿠시마에 거주 중이거나 고향을 떠나 피난 중인 주민도 상당수 참석, 원전 사고 이후 고통 받고 있는 생활을 공개하기도 했다. 15일까지 열린 행사에는 1만여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3월 11일 발생한 원전사고 이후 최대 규모 탈원전 회의이다. 독일 녹색당을 이끄는 레베카 헬프스 유럽의회 의원은 "독일에서는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원전 폐기를 추진하고 있다"며 "일본이 원전 없는 나라로 갈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14, 15일 요코하마역 인근 포트사이드 공원에서 야마시타 공원까지 평화행진을 하며 "원전을 없애자" 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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