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2007년1월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모임에서)
"일본은 힘이 빠져 버린 것 같고 중국은 한국을 쫓아오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2012년1월12일 CES에서)
이건희 삼성전자회장은 더 이상 '샌드위치론'을 언급하지 않았다. '긴장감을 늦춰선 안 된다'는 주문을 잊지는 않았지만, 이젠 '위기' 대신 '상상력과 창의성'이란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 회장이 '샌드위치론'을 5년 만에 접은 것은, 그만큼 삼성전자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 2012'전시장을 둘러본 뒤 "(내가 이런 얘기를 해선 안되겠지만) 일본은 너무 앞선 나라여서 힘이 빠져 버린 것 같고 중국은 젊은 나라여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지만 한국을 쫓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이런 발언은 5년 전 '샌드위치'상황을 강조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현실인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와 IT산업의 격변 속에서도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실적을 내면서 이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삼성전자의 업그레이드된 위상은 이번 CES에서 완전히 증명됐다는 게 중론이다. 55인치 OLED TV 등 차세대 제품을 선보인 삼성전자부스엔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렸으며, 일본이나 중국업체 부스를 가본 사람이라면 IT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기술과 디자인격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일본 언론들조차 "브라운관 TV를 통해 세계시장을 이끌었던 소니 등 일본 기업이 이젠 한국기업보다 열세인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일본기업의 존재감이 엷어지고 있다"고 평했다. 중국업체의 경우 디자인과 로고까지 국내 기업을 베낀 제품들이 버젓이 전시돼 망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장은 물론 현 상황에 만족할 수 없으며, 언제든 추월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그는 "앞으로 몇 년, 몇 십 년 사이에 정신 안 차리면 금방 뒤지겠다 하는 느낌이 들어 더 긴장하게 된다. 우리가 선진국을 앞서가는 것도 있지만 더 앞서야 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조해오던 '위기경영' 대신 이젠 '상상ㆍ창의경영'을 주문했다. '애플쇼크'이후 IT산업의 승부처가 첨단기술 보다는 창의성이 되고 있기 때문. 이 회장은 "미래에 대해서 충실하게 생각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활용해 힘 있게 나아가야 한다고 사장단에게 강조했다"고 전했다.
라스베이거스(미국)=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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