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쯤 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를 흔히 보려면 강원도 북부까지 가야 한다. 소나무가 자신에게 맞는 기후를 좇아 점점 북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비롯해 현재 중부지방에 널리 퍼져 있는 나무의 주요 서식지가 대부분 북상하고 있는 걸로 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2100년경 중부지방 숲은 어떤 나무로 채워질까. 숲 전문가들조차 지금으로선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미래 세대가 볼 숲은 지금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90년 뒤 중부지방은 참나무 천하?
현재 전국 숲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는 신갈나무다. 90년 뒤 신갈나무 역시 소나무처럼 강원도로 거의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지역에서 신갈나무가 살 수 있을 확률은 30%에도 못 미친다. 소나무만큼 전국 방방곡곡에 흔한 졸참나무도 그때쯤 되면 강원도 북부로 서식지를 옮긴다.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이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숲의 나무 분포가 어떻게 바뀔지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한 결과다.
IPCC는 2100년 지구의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4도 더 오를 걸로 예측한다. 국내 연평균 기온 역시 상승해 최소 17도 이상이 될 전망이다. 1990년대에는 13.5도였다. 이 때문에 한반도의 기후대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고, 숲에선 다양한 식생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시뮬레이션 결과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바로 신갈나무와 소나무, 졸참나무처럼 현재 경기와 충청 지역을 채우고 있는 나무가 중부지방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남부지방에 사는 나무들이 중부로 올라올 거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남부지방 대표 수종인 붉가시나무와 녹나무의 서식 범위는 생각만큼 북상하지 않았다. 현재 제주도와 전남 지역에 주로 사는 붉가시나무는 전북까지 올라오는 데 그쳤다. 전남 완도와 해남에 사는 녹나무는 서식 범위가 오히려 좁아졌다. 국립산림과학원 천정화 산림생태연구과 연구사는 "제한된 지역에 살며 자기들끼리 번식하다 보니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이 많아진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90년 뒤 중부지방 숲의 변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국내에 없던 외래종이 들어오거나 기후변화에 새롭게 적응한 일부 나무만이 살아 남아 주요 수종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서 인공조림을 하지 않는 이상 외래종이 자연적으로 들어오긴 그리 쉽지 않다. 천 연구사는 "현재 국내에 서식하는 수종 중 상대적으로 기후변화 적응력이 좋은 참나무류가 중부지방 숲을 메우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두 가지 나무가 숲을 채워 수종이 단순해지면 숲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취약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해당 수종에 치명적인 병충해라도 퍼지면 손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넓은 면적의 숲이 피해를 입게 된다. 천 연구사는 "참나무처럼 변한 환경에 적응을 잘 하는 품종을 미리 선발하거나 품종을 개량하는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숲 속 동물상은 더 급변
숲에 사는 동물은 나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후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금도 개미와 새, 사슴 등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산림과학원 권태성 산림생태연구과 연구사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해발 1,000m 이상 고산지대에 사는 코토쿠뿔개미의 개체 수가 현저히 줄고 있다. 90년 뒤에는 남한에서 아예 사라질 것으로 권 연구사는 내다보고 있다. 반면 높은 기온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왕침개미는 2100년까지 꾸준히 늘 것으로 예측됐다.
곤충의 분포가 바뀌면 자연히 식물도 영향을 받는다. 가령 풀씨를 먹는 짱구개미가 사라지면 풀이 제대로 번식할 수 없다. 권 연구사는 "시뮬레이션 결과 90년 동안 국내 연평균기온이 4도 오르면 현재 흔히 보는 개미 20종 중 남방계 개미 7종은 늘지만, 나머지 13종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사는 개미는 100여 종이다.
최근 제주도에선 전에 볼 수 없던 조류가 15종이나 새롭게 발견됐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푸른날개팔색조 등 아열대지방에 사는 새들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서귀포시는 1920년대 연평균 기온이 14.4도였지만, 2000년대 들어선 16.1도로 80년 새 1.7도가 올랐다.
북미대륙에서 제주도로 데려온 붉은사슴의 수도 늘고 있다. 2007년 붉은사슴이 사육 농가에서 도망쳤을 당시 겨울을 이겨내지 못할 거란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이 사슴은 현재 한라산 등지에서 20여 마리가 확인됐고, 무리 지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제주의 환경이 변했다는 의미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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