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서울대공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4m 높이의 거대한 큐브가 들어섰다. 하얀색 육면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치즈 조각 혹은 스펀지처럼 보인다. 이는 역시 치즈 조각 같은 가로 세로 1m의 큐브 42개를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다. 정육면체(Cube)와 벽돌(brick)이 더해져 '큐브릭'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구조물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건축과 현대미술의 만남을 키워드로 진행하는 2012년 공공미술프로젝트 아트폴리의 첫 작품으로 제작됐다.
"치즈나 스펀지 혹은 쓰다 남은 지우개 등 보는 사람들이 각자 해석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자칫 황량할 수 있는 야외에 한번쯤 가보고 싶게 하려고 모호한 형태로 만들었죠."
큐브릭을 만든 건축가 김찬중(43ㆍ경희대 건축학과 교수)씨는 "아이들이 호기심에 발로 차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둥근 홈을 팠고, 낙서도 할 수 있게 일부러 하얀색으로 칠했다"고 설명했다. 하버드 건축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한 김씨는 2006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베이징 비엔날레에서 아시아의 주목 받는 건축가 6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큐브릭은 움직이는 작은 미술관이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미끼다. 탁 트인 서울대공원에 독특한 형태로 자리잡은 큐브릭은 멀리서도 눈에 띄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궁금해하는 아이들 손에 이끌려 큐브릭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LED가 설치된 바닥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나 문화행사 등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투사된다. 서울대공원에 놀러 왔던 이들도 큐브릭에서 사진 찍고 놀다가 한번쯤 미술관에 들러보게 되지 않을까.
큐브릭이 주는 재미는 미술관 홍보에 그치지 않는다. 천장이 뚫려 있어 비나 눈을 피할 수는 없지만 큐브릭 안으로 들어가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 둥근 창문처럼 뚫린 구멍 사이로 밖을 내다볼 수 있어 서울대공원에 대한 다채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매끄럽게 군데군데 파인 홈은 촉각을 자극해 자꾸 만져보게 되는데, 눈으로만 감상하는 조각품이 아니라 친근한 물건처럼 느껴져 현대미술에 대한 거부감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큐브릭에서 현대미술관에 이르는 길에는 큐브릭을 구성한 것과 같은 작은 조각들이 곳곳에 놓여져 있다. 마치 거인이 먹다 흘린 치즈 부스러기 같은 조각들은 도보 관람객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이들 조각은 6개의 다양한 모양으로, 길을 걷다 파인 홈을 의자 삼아 앉아 쉬었다가 가도 된다. FRP(섬유강화플라스틱)라는 신소재를 사용해 단단하면서도 가벼워 어른들이 조각을 손쉽게 밀어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아트폴리 프로젝트를 기획한 정다영 건축학예연구사는 "건축의 공공성을 현대미술에 접목해 대중과 소통하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작품"이라면서 "아트폴리가 미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큐브릭은 3월 중순까지 서울대공원 입구 광장에 설치됐다가 그 이후부터 6월까지 서울대공원 야외와 미술관 조각공원 등으로 자리를 옮겨 다닐 예정이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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