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이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났다. 으레 새해가 오면 사람들은 지난 해와 비교하여 달라지는 것(특히 나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묵은 해를 보내는 연말과 새해를 맞이하는 연초가 이어진 가운데 사람들이 다소 들뜬 분위기에 휩싸이는 이유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기운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작년과 비교하여 그리 좋아질 일이 없을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기대 때문이리라. 새해에도 여전히 갚아야 할 주택대출, 자녀 등록금과 과외비, 그리고 치솟는 물가와 전세금은 차라리 공공연한 걱정일 뿐이다. 취직 못한 백수 자녀 얘기,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은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다. 아마도 이런 걱정들이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탓일 것이다.
지난 연말 정부를 비롯한 여러 민간 및 국책연구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올 경제 전망을 발표하였다. 정리해 보면 올 경제성장률이 3% 중반이 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인 것 같다. 이는 재작년 말에 발표된 2011년도 경제성장률 예상치에 비하면 분명 낮아진 수치로, 유럽발 재정위기, 중국 경제 경착륙 가능성, 북한 리스크, 가계부채, 그리고 양대 선거 등 각종 대내외 위험 요인이 반영된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이미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고, 예상 경제성장률 3% 중반대인 나라의 국민인 우리가 우울한 분위기 속에 새해를 맞이하고 있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불현듯 몇 년 전 어느 일본 경제학자가 필자에게 보내 준 e메일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2000년대 중반 들어 한국의 경제성장속도가 낮아진 데 대하여 일본의 소위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현상의 전조는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 그 경제학자는 우리 경제의 상태가 일본의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는 답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전 고성장기보다는 많이 낮아졌다고 해도 실질성장률 3.5%로 20년을 꾸준히 성장하면 경제 규모는 2배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대다수 국민이 올해 우리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예상을 하는 것을 단순히 고성장기의 추억을 떨치지 못한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한 답의 일부분은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소득분배구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에 따라 부침은 있었지만 1997년 이후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추세적으로 증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직후 수년간은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세로 인해, 그 이후 몇 년간은 확대된 유동성 공급을 통해 소득분배 악화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완충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 간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장과 이미 빠른 속도로 커져버린 가계부채는 수출과 내수 어느 쪽으로도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현 상황이 이럴진대 단기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경기부양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참에 소득분배구조의 개선과 관련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는 것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성장과 분배의 인과 관계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왔으며, 이에 관한 지배적인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양자간에 수많은 요인이 개입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하기 보다는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분배정책프로그램의 발굴과 실현을 당면과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분배정책의 방점은 고른 교육기회를 보장하고, 교육의 유효성 및 실용성을 높이는 한편, 실업자의 재취업 장벽을 낮추는 데 두어져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이 노동력의 양적, 질적 생산성뿐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을 제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허석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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