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담임제가 강한 우리나라 학교 특성상 담임교사는 상담교사보다 앞서 학교폭력을 감지하고 막을 수 있는 열쇠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최근 학교폭력 근절방안으로 "학생 생활지도를 잘하는 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도 교사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중한 수업과 잡무에 짓눌린 교사들은 "생활지도를 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인센티브가 무슨 소용이냐"며 시큰둥하다. 인센티브를 주기 앞서 담임교사의 수업시수(교사 1명이 1주간 수행해야 하는 수업단위 시간 수, 통상 주 18~20시간)를 대폭 줄여 생활지도권을 보장하고, 학교폭력 발생 시 교사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해 책임감을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교사에게만 책임 묻는 인센티브제
각 시도교육감들이 내놓은 인센티브제는 생활지도부장 등 관련 경력교사에게 교감 승진 시 가산점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교과부 학교폭력근절 자문위원회는 일반 교사들에게 생활지도를 독려하도록 승진 시 생활지도 점수 비율을 높게 적용하는 방안과 생활지도 수석교사제 도입 등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교육계 반응은 싸늘하다. 김대유 경기대 교직학과 겸임교수는 "교사들이 생활지도를 잘 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하는 게 먼저"라며 "구조를 바꿀 생각은 않고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생색만 내는 꼴"이라고 정부의 행태를 꼬집었다.
실효성도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오지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 사무국장은 "이미 생활지도부장 교사들은 근무평정 때 가산점을 받고 있다"며 새로운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승진 인센티브로는 전반적인 생활지도 강화를 유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오 국장은 "막연하게 생활지도를 잘 하라는 주문만 있을 뿐 '어떻게' 라는 부분이 빠져있어 현장의 교사들은 흘려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업시수 줄여 생활지도권 보장
전문가들은 담임교사에게 걸맞은 생활지도권을 보장할 것을 강조한다. 박종철 따돌림사회연구모임 부대표는 "담임교사는 매일 조회, 종례를 하고 체험학습, 학급회의 지도, 개별 상담에도 나서지만 이를 수업시수로 인정받지 못하니 생활교육은 늘 뒷전"이라며 "담임교사의 수업시수를 줄여 아이들과 스킨십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학교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 사회가 인성교육을 주문하지만 생활교육을 공식적인 교육과정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학교폭력 징후를 최대한 이른 단계에 발견하기 위해서는 담임교사에게 학생 관찰 의무가 부여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상담교사들은 제 발로 찾아오는 학생에 한해 상담을 하다 보니 학교폭력의 1차징후를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경상북도교육청은 최근 담임교사들에게 주 1회 이상 학생 생활행동 관찰일지를 의무적으로 쓰게 했다. 학교폭력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몰랐다"고 발뺌하는 교사들의 무기력한 변명을 줄여보겠다는 취지다. 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 성나경 전문상담교사는 "아이의 가정환경, 성격, 급우간 권력관계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는 담임교사의 '제보'가 사건해결의 단초가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평상시 담임교사의 역할로 ▦생활교육 수업시수 인정 ▦관찰기록 및 조기 발견·고지 의무를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에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폭력책임교사를 선출제로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학교폭력전담기구(이하 전담기구)도 책임교사의 역할을 강화해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전문상담교사, 보건교사, 책임교사 등으로 구성된 전담기구는 각 학교마다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돼 있지만 학교에서 실제로 가동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김대유 교수는 "전담기구의 책임교사를 선출제로 뽑아 총괄지휘 업무를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장이 책임교사를 지정할 경우 자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선출제로 정당성을 인정받으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 개최 등을 더욱 강력히 요구할 명분과 권위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른 보상도 같이 가야 한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은 최근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대책에서 책임교사들에게 ▦수업시수 감축 ▦수당지급 ▦해외연수 실시 등을 제안했다. 고유경 참교육학부모회 상담국장은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담임교사들을 아예 배제할 순 없고 또 모든 책임을 미룰 수도 없다.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특성을 살려 고유의 역할을 부여하고 나머지는 전문성을 갖춘 상담교사 등과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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