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사건'이 답이다."
수사권 조정안을 놓고 검찰과 신경전을 벌여 온 경찰이 수사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높일 방법으로 '고급사건 처리'를 겨냥, 열을 올리고 있다. 경찰이 말하는 고급사건은 대기업 범죄 등 범행액수가 크거나 고위 공무원, 대기업 인사 등이 연루된 사건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13일 "최근 몇 년간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검찰의 주요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 검찰이 자체적으로 인지한 사건은 소수에 불과하고 절대 다수가 감사원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이 고발을 의뢰한 사건이었다"며 "검찰에만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할 수 있도록 한 이런 기관들의 내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한 해 평균 60만 건을 처리하고 있는 강도 절도 강간 폭력 등 민생 치안 대처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대형 사건도 처리해야 검찰과의 수사권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일선 경찰 사이에서는 주요 정부기관이 검찰에만 사건을 넘기는 현실에 불만이 상당한 수준이다. 한 경찰은 "'서초동(검찰)은 국세청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세청에서 고발이나 수사 의뢰한 기업 관련 사건으로 검찰이 생색을 내는 측면이 있다"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국세청 금감원 등에서 넘어온 사건들은 추가로 크게 손 볼 내용이 없는 '다 된 밥상'과 다름 없어 경찰의 업무 부담도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찰청도 기회가 닿는 대로 기관장과 각 기관에 파견된 정보관 등을 통해 관련 규정 개정을 요청하는가 하면 관련 정보 수집을 해 오고 있다.
경찰의 이 같은 노력은 지난달 결실을 맺기도 했다. 감사원이 검찰에만 고발할 수 있도록 돼 있던 '사무처리규정'을 개정, 경찰에도 사건 수사를 의뢰할 수 있게 된 것. 감사원은 지난달 23일 '감사업무 중에 범죄 혐의를 확인한 경우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한다'던 규정을 '검찰총장에게 고발하되 필요한 경우 경찰청장에게 할 수 있다'로 개정했다. 수사권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경찰이 '고급사건'을 챙기기 위한 검찰과의 싸움에서 1승을 거둔 셈이다.
경찰은 또 경찰청에 경무관급인 수사기획관을 두고 특수수사과 등의 주요 사건 수사 지휘를 맡겼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에 해당하는 자리로, 이른바 '고급사건'을 다루면서 경찰의 수사력도 높이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또 범죄정보과도 신설, 고위 공직자와 기업들의 범죄 정황을 수집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그간 경찰도 수사력을 크게 배양한 만큼 국세청 금감원 등의 사건도 가져오고 대형 비리도 수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수사 등 경찰의 부실한 수사력이나 권력기관 눈치보기 지적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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